[영양 新르네상스, 길이 열리고 삶이 꽃피다 ①] 남북9축 고속도로

  • 박관영·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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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24 20:13  |  발행일 2026-03-25
영양에서 수도권 2시간대 시대 ‘성큼’ 다가온다…육지 속 섬에서 관광메카로

고려 말 영해도호부의 속현에서 조선 숙종 대에 이르러 독립 현으로 복구되며 지역 발전의 기틀을 닦았던 영양군. 17세기 사대부들의 이주와 함께 '영양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이곳이 지금은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과거 '한강의 기적'이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상징이었다면, 그 기적의 밑거름이 되었던 농어촌은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영양군은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열쇠로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미지(박준상)=생성형AI>

<이미지(박준상)=생성형AI>

고속도로·철도·4차로 없는 '교통 3無의 땅'

투자유치 어렵고 관광객들은 발길 돌리기도

경북·강원 10개 市郡 지방소멸 대응 절박감

30년 숙원의 교통망 연결로 균형발전 기대

제3차 건설계획 예타조사 면제로 추진 촉구

일제강점기와 6·25를 지나온 대한민국이 1960~90년대 이뤄낸 고도성장을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의 부흥을 일컫는 '라인강의 기적'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근래 초저출산, 초고령화, 지방소멸의 위기를 맞아, 이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도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기적의 원료(노동력과 값싼 식량)를 공급했던 농어촌 지역은 기적은커녕 사라질 위기를 겪고 있으니 말이다. '한강의 기적'은 '한강만의 기적'으로 끝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균형발전을 국가 핵심 전략, 생존전략으로 삼고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전략 자산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양군이 지역 생존과 재도약을 위해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남북9축고속도로 건설이다.


영양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속도로, 철도, 4차선 도로가 없는 교통 3무(無)의 땅이다. 군민들이 병원으로 가는 길도, 외지에서 관광객이 오는 길도, 물류가 이동하는 길도 여의치 않다. 영양군청은 교통망 고립을 끊어내기 위한 남북9축 고속도로를 생명의 길로 여기고 있다. 사진은 청송에서 영양으로 향하는 영양 31번 국도.

영양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속도로, 철도, 4차선 도로가 없는 '교통 3무(無)'의 땅이다. 군민들이 병원으로 가는 길도, 외지에서 관광객이 오는 길도, 물류가 이동하는 길도 여의치 않다. 영양군청은 교통망 고립을 끊어내기 위한 '남북9축 고속도로'를 생명의 길로 여기고 있다. 사진은 청송에서 영양으로 향하는 영양 31번 국도.

'교통 3무(無)' 지역, '육지 속의 섬' 영양


20일, 경북 안동에서 영양으로 향하는 국도를 올라탄 지 40여 분. 창밖의 풍경은 점차 가팔라지고 길은 뱀처럼 휘어지기 시작한다. 내비게이션 상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거리지만,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고속도로도, 철도도, 4차선 도로도 없는 '교통 3무(無)'의 땅, 영양군이다.


모바일 지도 앱에서 '교통상황' 정보를 켜고 전국 지도를 보면 북동쪽에 고속도로가 없는 넓고 어두운 부분이 있다. 영동고속도로(50번), 중앙고속도로(55번), 서산-영덕고속도로(30번), 동해로 둘러싸인 그 속에 영양군이 있다.


영양읍내에서 만난 주민 김 모 씨(72)는 구불구불한 길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병원 한 번 가려면 큰맘 먹어야 해요. 안동이나 포항 큰 병원 가려면 이 산굽이를 한 시간 넘게 넘어야 하는데, 응급환자라도 생기면 그 시간이 얼마나 피를 말리는지 모릅니다."


그의 말처럼 영양군민에게 도로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다. 생명과 직결된 '생명선'이다.


교통망의 고립은 경제의 혈맥도 막아버렸다. 물류 경쟁력이 떨어지고, 투자 유치가 어렵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게 만든다.


전국에서 소멸 위험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통계 수치는, 어쩌면 이 열악한 '길' 위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북9축고속도로, 지방소멸 균형발전의 마중물로


남북9축고속도로 건설은 강원도의 양구·인제·홍천·평창·정선·영월과 경북의 봉화·영양·청송·영천을 잇는 309.5㎞ 총사업비 14조8천870억 원 규모의 사업이다. 1991년 국토종합계획에 반영됐으나 그 후 30여 년 동안 진척이 거의 없다.


영양군의 교통망 고립을 끊어내기 위한 여정은 2021년 실무진의 첫 만남에서 시작됐다. 영양군이 주도한 이 작은 움직임은 2년 뒤 경북과 강원을 잇는 10개 지자체의 '남북9축 고속도로 추진협의회' 창립이라는 협력의 물결로 이어졌다.


2024년은 영양군의 절박함이 '만인소'라는 뜨거운 청원으로 분출된 해였다. 당초 목표인 1만 명을 훌쩍 넘긴 1만 5천여 명의 서명지가 정부에 전달됐고, 11월에는 군민 1만여 명이 집결한 '범군민 총결의대회'를 통해 '육지 속의 섬'을 탈피하려는 절박한 의지를 대내외에 각인시켰다.


학술적 검토와 상징적 연대도 이어졌다. 지난해 6월 봉화에서 열린 '남북9축고속도로 조기건설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남북9축 고속도로 건설은 지방소멸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마중물 사업이란 점을 강조했으며, '기존 수요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정책적 수요를 창출하고 유도하는 기반시설'로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적 토대를 구축했다.


이어 10월 제55회 군민 체육대회에서는 10개 시·군 대표단이 '남북9축 고속도로 표지판 공동 제막'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단절된 길을 잇고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강력한 연대의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여느 대구경북의 관공서 청사 주변과 다르게 영양군청 앞의 차선은 그리 넓지 않다. 영양군청 앞 2차선 도로는 교통의 척박함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영양군은 2021년 남북9축 고속도로 추진협의회를 창설하고 청원·군민결의대회 등으로  육지의 섬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여느 대구경북의 관공서 청사 주변과 다르게 영양군청 앞의 차선은 그리 넓지 않다. 영양군청 앞 2차선 도로는 교통의 척박함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영양군은 2021년 '남북9축 고속도로 추진협의회'를 창설하고 청원·군민결의대회 등으로 '육지의 섬'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교통망 연결로 생태·힐링 관광의 메카 될 것


2017년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은 한적한 어촌이던 강원도 양양군을 수도권 2030 세대가 즐겨 찾는 관광 메카로 탈바꿈시켰다.


2024년 통계를 보면 영동고속도로와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있는 강원지역 6개 시군은 지역 방문객 중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율이 40~70%에 이르지만, 영양은 15%대에 머무르고 있다.


경북도가 실시한 '영천~양구(남북9축)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 서울-영양의 통행시간은 2시간 단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남북9축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수도권 및 남부권과의 접근성이 2시간 이내로 단축된다면 영양 자작나무숲,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등이 교통망과 연결되어 생태·힐링 관광의 메카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영양 고추·산나물 등 농특산물의 물류비 절감과 농가 소득 증대, 응급 의료 시스템 접근성 개선, 병원·교육·문화 시설에 대한 접근성 제고, 귀농·귀촌 인구 증가 등으로 지방 소멸 위기 극복의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3차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예타면제로 포함돼야


영양군을 비롯한 10개 시군은 국민주권정부 국정과제 관리계획에 포함된 남북9축고속도로 건설이 조만간 발표될 제3차 고속도로 건설계획(2026~2030)에 중점사업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경제성 논리(비용/편익 분석)에 막혀 오랫동안 방치됐던 사업인 만큼, 지역 소멸 위기 극복과 국토 균형 발전 차원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로 추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과거 88올림픽고속도로나 남부내륙철도가 예타 면제를 통해 지역의 숨통을 틔웠듯, 소멸 위기에 처한 내륙을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성 논리를 뛰어넘는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차원의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종 5년(1664) 조암 등이 올린 영양현을 독립된 현으로 복구해 달라는 상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영양이 비록 후미진 고을이라고는 하지만 토지가 비옥하고, 넓이가 사방 2백여 리이며, 토지는 2천여 결, 창고의 곡식은 2천여 석, 인구는 4천여 명, 군정(軍丁)은 2백여 인이니, 자체적으로 넉넉한 고을이 되기에 충분한데 무엇에 구애돼 복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조에서 관아와 멀어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부해 복현은 이뤄지지 않았고, 숙종 대에 가서 복구됐다.


영양 버스정류장. 조용하고 평온하다는 표현보다 척박하고 삭막하다는 낱말이 떠오른다. 영양은 전국에서 소멸위험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인데, 이 열악한 길이 이를 보여준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이 강원도 양양에 활력을 준 것처럼 남북9축 고속도로도 영양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양 버스정류장. 조용하고 평온하다는 표현보다 척박하고 삭막하다는 낱말이 떠오른다. 영양은 전국에서 소멸위험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인데, 이 열악한 '길'이 이를 보여준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이 강원도 양양에 활력을 준 것처럼 남북9축 고속도로도 영양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북9축고속도로 추진협의회와 10개 시군 주민들의 청원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직도 오지와 두메산골로 불리는 우리 지역이 도시민들에게는 정감 있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낙후지역이자 소멸지역의 또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우리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 왔습니다. 오히려 지역 간 불균형의 책임을 예타제도에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예타가 아니라 균형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돼야 합니다."


1664년, 영양의 선비들이 올린 복현 상소문에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360여 년이 흐른 지금의 고속도로 건설 청원서에는 사라져가는 고향을 지키려는 절박함만이 가득하다.


조선시대 영양의 르네상스를 이끈 복현 운동은 지역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므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십 년에 걸쳐 성과를 거뒀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남북9축 고속도로 건설 청원은 점점 커지는 지역 소멸 위기의 절박함 속에서 나온 것인 만큼 다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남북9축 고속도로가 영양의 신르네상스를 이끌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영양군민들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의 실천을 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영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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