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바게트 빵과 목숨값

  •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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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9  |  수정 2022-10-19 06:47  |  발행일 2022-10-19 제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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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변호사

중앙선을 넘어온 차 때문에 아버지가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때 가장의 목숨값으로 가족들이 받을 위자료 합계액은 1억원쯤 된다. 출근길 흔히 볼 수 있는 고급승용차 한 대 사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죽지 않았다면 벌 수 있었던 망인의 수입도 별도로 배상받겠지만 그건 노동의 대가일 뿐 온전한 목숨값은 아니다. 사람의 목숨은 천금보다 중하고 그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우리는 가르치고 배운다. 그런데 그 값이 손해배상법의 저울로 1억원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천수를 누리면서 가족과 누릴 희로애락의 값어치가 돈 1억원이라면 과연 정의로운가? 도로보다 목숨이 더 경시되는 곳이 산업현장이다. 조선소나 제철소처럼 중량물을 다루는 위험한 현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도로 위의 운전자보다 훨씬 열악하다. 손수운전이 싫다면 열차나 버스를 탈 수도 있겠지만 몇 십 층 블록 위에서 한 줄 안전띠에 의지해 용접을 해야 하는 사람은 선택지가 없다. 전쟁터가 아닌 일터에서 매일 사람들이 죽어도 마치 일상의 당연한 불행인 것처럼 덤덤히 장례식이 거행될 뿐이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에, 태안화력발전소의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서 사라진 젊은 목숨을 계기로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기업주를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뜻이 모여서, 결국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올해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의 요지는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를 중형에 처해서 그들로 하여금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안전 확보 방안을 도모케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 취지대로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아니면 애먼 기업가만 잡게 될지 지켜봐야겠지만 고개가 쉬이 끄덕여지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값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사람의 가치를 그대로 둔 채 형사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보호의 대상을 천시하면서 보호를 소홀했다는 이유로 징역기간만 늘리는 것은 너무 엉성한 그물질이다.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 기업인더러, 목숨값보다 비싼 안전장구를 왜 갖추지 않았냐고 비난하는 것은 그래서 공염불이다. 형사처벌을 강화해도 재수 없는 몇 분의 사장님만 징역을 살 뿐이고 이마저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참작할 유리한 양형사유'를 빌미로 주먹에 쥔 모래처럼 사라질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다른 것보다 낮은 가격이 매겨진다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 다른 것에 의해 침해된다는 말이다. 개 사료가 아동의 급식보다 비싼 순간 우리는 개보다 못한 대접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값을 높이려는 노력, 사람의 목숨이 침해되면 기업이 망할 정도의 돈을 배상해야 한다는 민사판결이 없는 한 그것은 늘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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