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영웅 현대미술가 |
20세기 초 소련에서 스탈린의 지시로 고려인들을 포함한 소수민족의 강제이동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집단 생산체제에서 노동생산성의 증대를 위한 이주라고 했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들은 스탈린이 각 지역의 문화를 이어간 사람들이 성장해 독립할 가능성이 두려워, 사람들을 다른 환경으로 이동시켜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해체하려 했다고 본다. 이처럼 문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정설로 통한다.
나는 고향인 대구에서 20년,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20년을 살았다. 물론 지금은 2020년 하반기부터 준비해 새롭게 터를 잡은 경북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그런데 서울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해 다른 두 지역을 동시에 경험했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 등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의 거점도시를 매주 주기적으로 다니며 일했기 때문이다.
그때 느낀 것은 개인차도 존재하지만 분명 지역마다 사람들의 성향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고향 사람들의 문화적 특징과 내 고유한 성격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이 대구·경북 남자들에 대해 논한 것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무뚝뚝함'과 동시에 '알고 보면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통 무뚝뚝한 태도와 퉁명스러운 말투에서 오해하기 쉬운데 알고 보면 속정이 깊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서툴고 부끄러워하지만, 싫어하는 것에는 대체로 정색한다.
즉 요즘 말로 '츤데레'들이 득실득실한 동네다. 일본어에서 유래된 츤데레는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우리말에서는 정확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다고 한다. 당시에는 츤데레처럼 이를 잘 설명할 만한 단어가 없었다.
지역의 환경과 사람들의 성격을 연결하면서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경북은 대체로 강수량이 적고 대구는 여름에 엄청나게 더운 도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중한 물 때문에 눈물조차 아끼려고 했나? 아니면 사용하고 싶어도 뜨거운 온도에 눈물까지 말라버린 것인가? 그렇다고 그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 그 뜨거운 감정은 어떻게 승화되었을까?
성인이 된 이후 서울에서 성장한 내가 20년 만에 돌아와 바라본 나의 고향은 어릴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하다. 내 눈에 비친 고향 사람들은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대신 다른 표현법으로 발전시켰다. 지역적으로 발견된다면 이것은 문화다. 감정을 표현하는 독특한 비언어적 문화다. 나는 두 달간 내 눈에 비친 '차갑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알고 보면 다른' 문화에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구영웅 (현대미술가)

구영웅 현대미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