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어둠은 열정의 놀이터

  •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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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8 06:44  |  수정 2023-01-18 06:45  |  발행일 2023-01-18 제26면
어둠이란 역경이나 간절함
빛 동경하며 갈고닦는 시간
새해 신춘문예 당선자 탄생
빛에 심취해 어둠 잊지 말고
끈기를 갖고 열정을 다하라
김살로메 소설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성경 구절에서 파생된 이 경구는 본질을 호도하는 사건이나 시국을 성토할 때 즐겨 쓰인다. 정의와 불의를 단순히 빛과 어둠에 빗댄 말에 지나지 않지만, 어둠이 주는 다층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저 말이 꽤 불편하게 들린다. 가차 없이 파편화하고 무력화시킬 만큼 어둠은 지는 이미지일까. 몸과 마음이 한 가지이듯 빛과 어둠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빛 앞에서 지옥인 경우도 허다하고, 어둠 속에서 천국인 경우도 흔하다. 모든 빛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뒤뜰 없는 앞뜰은 효율 낮은 반쪽 정원에 지나지 않고, 물 없는 분수대는 허울 좋은 장치에 그치고 만다. 이것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백번 양보해 빛이 어둠을 이겼다 치자. 반짝이는 보석이 될지 빛 좋은 개살구가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사전에서 어둠을 '어두운 상태 또는 그런 때'라고 정의한다. 불의나 부정의 낌새가 없는 담백한 뜻풀이다. 어둠의 속성은 악이나 불의보다 준비와 역경과 더 잘 어울린다. 어둠 속의 열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피땀 등의 예시 구절이 말해주지 않는가. 간절함이나 절실함 역시 빛이 아니라 어둠을 먹고 산다. 어둠 속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의지만 있다면 목표한 바로 곧장 안내받을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있을지언정 그 막막함이 한 우물을 파게 만든다. 그곳에서는 빛을 그림과 동시에 자기 성찰을 가능케 하는 힘이 생긴다. 차곡차곡 성실하게 암중모색의 의미를 체화할 수도 있다. '빛보다 어둠이 숭고한 사상을 더 많이 만들어 낸다'는 명제가 참이 되는 순간이다.

새해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의 턱을 넘은 작가들이 수십 명 탄생했다. 축하와 동기부여의 의미로 찬찬히 그들 면면을 살펴본다. 하나같이 어둠이 빛을 쉬게 하는 그 시간을 잘 견뎌냈다. 그들에게 어둠은 꽃 피우는 준비 기간이었다. 빛의 시간을 유예한 채, 어둠 속에서 시간을 벼리고 벼렸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그 동굴에서 다채롭고 입체적인 자신만의 캐릭터들과 동고동락했다.

신문사들이 원하는 당선자의 요건은 수십 년째 한결같다. '젊고 패기 넘치는'이 빠지지 않는다. 이 말이 육체적인 의미로 한정되는 것이 아님이 얼마나 다행인지. 결기 우뚝한 채로 어둠의 시간을 연마한 모든 예비문학도는 젊고 패기 넘칠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제 다양한 이력의 당선자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예외 없이 이번에도 청춘의 발랄함 못지않게 중년 이후의 진중함을 지닌 등단자들도 제법 보인다. 특수한 여건에 있는 경우나 고령의 등단자에게 마음결이 닿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어둠을 연민하는 사람인 데다, 그들의 열정이나 패기가 '어두운 상태 또는 그런 때'를 오랫동안 친구로 삼았음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빛의 길이 열린 것일까. 안타깝게도 신문 지면을 장식한 대부분의 당선자는 반짝하고 사라지고 만다. 너무 쉽게 빛의 시간을 동경한 나머지 자신이 건너온 어둠의 강물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많이 쓰고 오래 쓰는 자가 살아남는다. 참신한 패기의 기준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어둠을 마다치 않고 숙성할 수 있는 끈기가 전부이다. 이는 스스로를 단속하는 말이기도 하다.

쓰는 자에게 최대 강적은 잠깐의 빛 뒤에 오는 오랜 침묵이다. 빛과 어둠이 한 몸인 걸 안다면 빛의 쓰레기더미보다 어둠 속 원석에 집중할 일이다. 음지에서 음흉한 일을 하면 공공의 적이 되지만, 열정을 다하면 반기는 손님이 된다. 어둠 없는 빛의 발산이 어디 있을까. 어둠은 빛을 빛이게 하는 맞춤형 쉼터이자 치열한 놀이터다.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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