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사회문제 고발…리얼리티에 재미도 더했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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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9 08:18  |  수정 2023-02-09 08:19  |  발행일 2023-02-09 제14면
극장가 실화소재 영화들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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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극장가에 실화소재 영화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등을 스크린으로 옮겨 주목받고 있는 것. 이들 실화소재 영화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든 픽션영화에 비해 사실이 가진 리얼리티에 영화적 재미까지 더해져 더욱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란의 연쇄살인 다룬 '성스러운 거미'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이란 사회를 발칵 뒤집은 희대의 연쇄살인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2000년대 초반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에서는 사이드 하네이라는 남성이 16명의 여성을 살해했다. 그는 신출귀몰하고 은밀한 살인 수법 때문에 잡히기 전까지 '거미'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여성들을 살해한 뒤 마치 거미가 먹이를 칭칭 감아두는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로 감싸 길거리에 내다 버렸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죽음으로 사회 전체가 분노에 휩싸였지만,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를 정의의 투사로 신봉했다. '가능한 많은 매춘부를 죽여 사회를 깨끗이 정화하고 싶었다'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종교적 의무'에 박수를 보낸 것이다. 영화는 세 아이의 아빠인 범인이 가족을 대할 때의 온화한 모습과 반대로 피해자들에게 가혹한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양면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또 사건 해결에 나선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의 사연도 주목받는데 그녀는 자타 공인 이란 최고의 스타에서 연인과의 애정 행각이 담긴 영상이 유출되면서 이란 사회의 심각한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성스러운 거미'의 캐스팅 디렉터로 활동하던 중 히잡 없이 촬영해야 한다는 조건에 겁먹은 여배우가 중도하차하자 직접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이 영화로 이란 최초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지만 여전히 본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떠돌고 있다.

◆콜센터 현장실습생 죽음 모티브 '다음 소희'

한국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이동통신사 콜센터 현장실습 여고생의 죽음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당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녀는 인터넷·휴대전화 콜센터에서 이른바 '욕받이' 부서에 배치돼 실습했다. 할당받은 고객 응대 횟수에 미달하면 퇴근도 못 하고, 열악한 근무 조건에 한마디 항변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성스러운 거미' 이란 연쇄살인 다뤄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출연 주목

현장실습 학생 죽음 다룬 '다음 소희'
기업·교육당국 등의 부당관행 짚어

세상 바꾼 여성들 공조 그린 '콜 제인'
임신중단 합법화되기까지의 이야기



정주리 감독, 배두나·김시은 배우까지 여성들이 만든 이 영화는 댄서를 꿈꿨던 밝고 쾌활한 소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이 사회가 얼마나 참혹한 가해자였는지를 조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소녀의 죽음이 사회적 살인이었음을 고발한다.

극의 전반부는 실습생 소희가 콜센터에서 시달리는 모습을, 후반부는 소희 사건을 맡은 형사 유진이 학교와 기업, 교육 당국의 부당한 관행과 시스템을 짚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전부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정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대신 이야기 형식을 택한 건 고발하고 분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뭔가 지속적인 이야기가 사람들 마음에 남아 희망의 싹을 틔우기 바랐던 것"이라고 소개했다.

◆여성단체 활동상 그린 '콜 제인'

다음 달 개봉하는 '콜 제인'은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공조를 그린 영화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미국 시카고의 실존단체인 '제인스'는 1960년대부터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임신 중단이 합법화될 때까지 1만2천명의 여성이 안전한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주부,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 인종, 계층의 여성이 더 많은 여성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임에 합류했다.

영화는 임신으로 목숨이 위험해진 조이가 긴급 임신중절수술위원회에 참석하면서 출발한다. 전원 남성으로만 구성된 그곳에서 임신 당사자인 조이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결국 전원 반대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절망한 조이는 '임신으로 불안하다면 제인에게 전화하세요'라는 벽보 광고에 작은 희망을 가지는데….

전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을 양성한 흥행작 '캐롤'의 각본가이자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인 필리스 나지 감독이 첫 연출을 맡았다. '아바타' 시리즈의 레전드 배우 시고니 위버, 영화 '헝거게임'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주연을 맡아 믿고 보는 언니들의 힘을 보여준다.

이 밖에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이 거사를 도모하던 때부터 사형판결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 '영웅',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모티브로 황정민·현빈이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을 구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교섭' 등 앞서 개봉한 실화영화들도 2월 극장가에서 꾸준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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