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니까 여름은 당신이 이 세상에 보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장. 잠긴 문이 잠긴 채로 저물어가더라도 그건 모두 당신이 쓴 편지들에 대한 답장 . 어느 골목에서 멈칫했던 시간이 얼마 뒤 먼 고장에서 비로 내리게 되는 일 혹은 이제 그만 살까? 우리 참 많이 살았다고 유리창에 대고 고백하는 일도 당신이 오래전에 쓴 편지들에 대한 답장들
2. 세상을 오므려 꽃 한 송이에 밀어 넣으려면 오후 3시쯤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2시부터는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기울어지겠지요. 아뇨, 당신은 그래도 계속 편지를 쓰세요. 3시까지는 아직 멀었거든요. 또 다른 지구는 필요하지 않아요. 그런 여름이라 그래요.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천천히 점심을 먹고 깊은 잠을 자도록 해봐요.
이승희 - 여름
2. 세상을 오므려 꽃 한 송이에 밀어 넣으려면 오후 3시쯤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2시부터는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기울어지겠지요. 아뇨, 당신은 그래도 계속 편지를 쓰세요. 3시까지는 아직 멀었거든요. 또 다른 지구는 필요하지 않아요. 그런 여름이라 그래요.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천천히 점심을 먹고 깊은 잠을 자도록 해봐요.
이승희 -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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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여름에게 우선 물어본다. 너는 왜 더운 걸 좋아하느냐. 여름이 친절하게 무어라고 중얼거린다면, 아니 여름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내 귀와 몸을 웅크리거나 바꾸어야겠다. 그리고 여름과 친밀해져서 질문의 숫자를 자꾸 덧붙일 수 있는 평안이 생기면 여름의 더위쯤이야 마냥 시시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여름은 나의 거울이 아닐까. "세상을 오므려 꽃 한 송이에 밀어 넣으려면 오후 3시쯤"이 좋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여름은 2시부터 기차를 타거나 편지를 쓰거나 또 다른 지구는 필요 없이 그냥 여름에 익숙해지는 것, 여름이라는 실재와 여름이라는 환상에 익숙해지는 것, 그게 여름의 목소리를 듣는 귀의 형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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