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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앙로역 추모 공간 내부 모습. |
핼러윈데이. 매년 성인의 날 전날 31일에는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나 정령이나 마녀 등이 출몰한다고 믿어, 이날 밤에는 호박을 도려낸 등불을 집 앞에 내어 놓고 정령이나 마녀들에게 육신을 뺏기지 않기 위해 유령 이나 흡혈귀, 마녀, 괴물, 요정, 혹은 인기 만화의 주인공 등의 복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며 사탕을 받아내는 놀이이자 축제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핼러윈데이가 축제의 단어가 아니라 아픔과 슬픔의 단어로 치환이 되어버렸다. 2022년 10월29일. 서울역 근처의 작업실에서 함께 작업하던 딸이 이태원에 사고가 났다며 SNS에 올린 사진을 보여주었다. 도로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수 십 대의 응급차를 보며 순간 지났던 참사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필자가 기억하는 참사는 한강의 성수대교가 내려 앉고, 도심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대구의 지하철에 화재가 일어나고, 바다의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으로, 이제는 골목길에서 압사가 일어났다. 특히 세월호에서는 꽃다운 학생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생방송으로 보았다. 그때의 충격과 공포감, 허탈감은 국민들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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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앙로역 추모 공간 내부 모습. |
뉴욕 9·11 테러 애도 '메모리얼 파크'
참사 당시 붕괴된 철골 일부 남겨
재발 방지 넘어 '재기의 용기' 상징
중앙로역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관'
잡동사니 모아 놓은 듯한 전시물품
유가족 뜻과 진정성 밴 디자인 필요
지하에서 땅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길에서 건물에서 다리에서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가 곳곳마다 일어났다.
방송사마다 쏟아내는 긴급뉴스는 숫자부터 강조했다. 숫자로써 사고의 중대함을 먼저 알리려고 하였다. 언론은 현장의 긴박함과 떠도는 소문들을 필터 없이 옮기고 쏟아내었다. 원인규명보다 결과의 수치만 올라가고 있었다. 숫자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만날지도 모를 사람들이,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는 허탈함과 안타까움, 슬픔의 죽음이었다. 가슴에서 밀려오는 슬픔과 안타까움의 서러움이 목까지 가득 찼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디서든 토해내지 않고서는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대구에 내려와서 중앙로역을 찾아 나섰다. 20년 전 2003년 2월18일. 그날은 수성구 중동의 사무실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조금 늦게 일어났었다. 사무실 환기를 위해 창을 열었더니 시내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 연기가 중앙로 지하철역에서 피어올랐던 연기였던 사실을 알고부터 지하철 타기를 꺼려 하였다. 더욱이 참사가 발생한 중앙로역은 그 후로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처음으로 중앙로역을 찾아갔다. 사실 참사 이후 그 공간에 들어서기를 꺼리기도 했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 뉴스를 접하고 나니 찾아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중앙로역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여느 역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기억에 의한 예감이기도 하겠지만 추모의 공간이라고 만들어 놓은 전시관은 솔직히 복도에 못 쓰는 물건들을 구석에 밀어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커피 한잔이 식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전시된 물품과 사고의 흔적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곳을 찾아오는 시민은 없었다. 중년을 넘긴 아주머니 한 분이 입구에서 고개만 내밀고 살피더니 제 갈 길을 가셨다. 그곳에서 전시된 글과 사진을 다 읽고 나니 20분 조금 넘게 걸렸다. 누가 20분을 할애하여 이 공간을 찾아 올까?
시장이 바뀌고 전동차의 디자인까지 바뀌었지만 그 날의 아픈 기억만큼은 역사 내 구석에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중앙로 지하철 역사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가? 살아남은 자들의 역할과 의무는 무엇일까? 매년 찾아오는 추모일을 맞이하여 팔공산에 위치한 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지역상인회와의 갈등은 대구시민임을 스스로 부끄럽게 한다.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이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의롭고 아름다운 일인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은 살아남은 분들을 대신하여 헌신하였음을 인정하고 통감하여야 한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과 부상자들은 우리가 보살피고 위로를 해 드려야 한다.
참사 후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불안감을 느낀다. 특히 부상자와 가족이나 지인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인이 된 분들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이다. 처절한 원망이 아니라 다시는 억울하게 생사를 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 같은 당부이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뉴욕에서 일어난 9·11테러로 인한 참사였다. 뉴욕은 9·11 테러 이후 어떻게 아픔을 딛고 일어나고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에너지를 증폭시키게 하는가?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는 '그라운드 제로'라고 불리고 있으며, 건물이 붕괴 후에 건물의 철골 구조물 중 일부를 남겨 놓았다. '굴하지 않는 미국의 상징'으로 의미화했고 세계적인 디자인공모를 통해 지어진 전시관은 아픔의 기억뿐만 아니라 재기의 용기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9·11테러 전시관의 공간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는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 역사를 후세에 남기지 않겠다"는 미국 국민들의 의지와 열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매년 찾아오는 추모객뿐만 아니라 관광의 명소가 되어 전 세계인의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여기에는 9·11 메모리얼 파크가 조성되었고 신세계무역센터가 지어졌다. 현장 옆의 빌딩에는 소방관 추모비도 있다
대구의 지하철 참사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대구의 '한'이 되었다. 우리는 그 때의 아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희망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참사 이후 생긴 2·18 안전문화재단은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태어났다. 국가의 지원이 아닌 국민의 순수한 정성으로 모아진 귀한 재단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가? 시민들은 궁금해야 하고 관심을 가지며 공동체의 의식으로 관여와 참여를 해야 한다.
참사 당시 지상으로의 탈출을 위해 피난자들이 사용한 방법으로는 벽을 짚으면서 움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앞사람의 옷이나 신체 부위를 잡고 이동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피난 도중 생존자들에게 가장 도움을 준 것은 유도등, 광고판 불빛, 구조대원의 플래시 불빛 등의 수순이었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공간은 충분한 보완이 이루어져 설치되었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천정 벽에 붙은 유도등은 검은 연기로 금세 덮일 것이기에 천정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비상유도등이 설치되고 그 등이 손잡이 역활을 하면서 피난방향을 알리는 표시가 된다면 어떨까 라는 작은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누구라도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생각이 떠오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어느 책의 식상한 구절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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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앙로역 추모 공간 외부 모습. |
당장의 보상도 중요하겠지만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며 살아남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각오가 생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날의 시간은 기억하고 그날의 공간은 보존되겠지만 우리는 진화해야 하고 승화해야 한다. 추모하고 위로하며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희생자분들에게 하고 지금도 고통을 받는 분들에게 다가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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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지내고 매년 봉제사를 지냈다. 필자는 지금의 '제사상'에서 승화된 '기념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은 슬픔과 아픔의 기억이 반복되는 공간이 아니라 희망의 용기가 샘솟는 장소, 명소의 공간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그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공간"이다. 살아남은 분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고, 희생당하신 고인분들과 그들의 가족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드릴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인가? 형식적으로 차려놓은 제사상은 아닌가? 미국의 9·11테러기념관보다 덩치는 밀리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는 한국의 속담처럼 우리도 우리나름의 기념장소를 디자인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있는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기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인(sign)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과 살아남은 가족들의 뜻이 충분히 밴 디자인(Design)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중앙로역과 연계된 지하상가의 길은 서먹하고 빈 상가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변화가 없으니 리듬이 없고 지루하였다. 천장에 매달린 광고판은 아우성이고 반듯한 직선의 상가 유리벽은 차갑고 무뚝뚝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 길은 특별한 길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지하로가 될 수 있다. 추모와 위로 그리고 슬픔이 승화된 대구시민의 저력이 보이는 상업과 문화의 길로 거듭나게 되기를 축원한다.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a30co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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