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대화, 학교의 실험

  • 김언동 경북대사범대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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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7 06:46  |  수정 2023-02-27 07:34  |  발행일 2023-02-27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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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동 (경북대사범대부설고 교사)

멈추지 않는 성장을 요구하는 시대, '좋은 가족'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능력 있는 배우자, 희생하는 부모,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성적도 좋은 자녀라는 조합일까요. 이런 이상적 가족 모습에 대한 환상은 큰 심적 부담과 무게감으로 개인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에 대한 반발로 결혼과 출산으로 이뤄진 기존 가족 형태를 대신한 새로운 공동체를 대안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박혜윤 작가의 책 '오히려 최첨단 가족'은 이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마흔에 은퇴한 남편, 관습으로 규정되어 온 가사노동과 육아 방식을 내려놓은 엄마, 학교 공부보다는 친구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뜨개질과 요리를 하는 큰딸,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면 절대 안 하는 고집스러운 작은 딸. 이 가족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만큼만 하다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집단입니다. 사회 통념상 사회적 성공과 발전을 독려하거나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대신 각자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대화하며 상대를 그대로 인정해 주지요. 장점과 부족함을 구분하기보다는 개별 특성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각자의 방을 가지는 대신 다 같이 거실에서 자기 일을 하며 공존합니다. 이 가족이 사는 모습은 우리에게 '우리 가족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솔직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작가도 '최첨단 실험'처럼 보이는 자기 가족의 삶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품습니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한 건물이 있다고 하면서 독자들에게 시애틀에 있는 '불릿 센터'를 소개합니다. 불릿 센터는 250년 동안 상하수도나 전기 난방 공급 없이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빗물을 받아 정화해서 쓰고, 하수 역시 자체 정화를 하지요. 전기, 난방은 태양열로 충당하고요. 그런데 건물에 쓰인 기술, 자재, 공법 그 어떤 것도 최첨단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건물의 진정한 첨단은 '대화'라고 합니다. 건물을 관리하는 엔지니어, 자재 도매업자, 허가를 내준 공무원과 주변 시민들 모두가 함께 자신이 아는 것들을 나눈 결과 이 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불릿 센터의 가이드는 이 건물이 '살아 있는 빌딩'이라고 설명합니다. 자급하고 자립한다고 해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기술과 철학, 주변 자연환경과 인간이 만든 모든 조건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덕분에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작가는 실험처럼 보이는 자기 가족의 삶을 설명하는 것도 '대화'에서 답을 찾습니다. 새로운 무언가에 마음을 열고 실험을 멈추지 않는 것은 결코 혼자 할 수 없으니까요. 작가는 '자기 가족의 대화가 일상적인 수다를 포함하지만, 결국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가족의 구조물이 되어 간다'고 말합니다.

2월1일 대전에서 열린 고교학점제 성과발표회에서 저는 '학교 문화 및 운영 혁신'에 관한 주제 토의 사회를 맡았습니다. 우수 학교 사례로 소개된 울산 약사고와 전남 목포 포제일여고의 성과를 통해 학교 문화와 운영 혁신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학교는 첨단 시설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학교의 주인으로서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는 대화가 수많은 도전과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것이라는 것이죠. 대화를 통해 더 나은 학교를 상상하고, 생각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은 분명 불안하고 불편한 점도 있겠지요. 하지만 공감과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대화는 교육공동체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번 칼럼은 2018년 2월부터 이어온 저의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제가 건네는 교육에 대한 말 걸기에 함께 마음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언동 (경북대사범대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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