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합장 선거 '의리와 도리'

  • 박세국 상주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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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2  |  수정 2023-03-02 07:04  |  발행일 2023-03-02 제21면

[기고] 조합장 선거 의리와 도리
박세국〈상주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 주무관〉

"설사 다른 후보가 돈 돌린 사실을 알아도 말 못 한다. 좁은 동네에서 누가 신고했는지 다 들통난다. 다 이웃이고 선후배지간인데 신고한 사실이 알려지면 인심 잃고 동네에서 못 산다. 심지어 조합원 중에는 다른 후보와 비교하면서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조합원도 있다."

오는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입후보 예정자들이 면담 자리에서 한 말들이다. 자기는 정정당당하게 선거에 임하고 싶지만 '결국 돈을 써야 하나'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런 일화들은 조합장선거의 암울한 백서다. 선거인단이 다른 선거에 비해 규모가 작은 데다 후보와 선거인이 친분으로 얽혀 있어 금품을 주고받기 쉬울 뿐만 아니라 주고받은 사실이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표를 거래하는 일이 당연시되는, 견고하고 고질적인 '묵인과 침묵의 카르텔'이다.

투자자인 당선인이 재임 중 그 투자금을 회수하려 들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어떤 이들은 '조합장이 당선된 후 무리하게 새로운 사업을 벌이거나 확장하는 것도 자신의 손실을 메꾸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투자는 주식의 작전과도 같아 선량한 다수에게 피해가 돌아가며 그 다수는 바로 조합원들이다.

조합은 조합원의 출자로 설립된 협동조직으로 조합원의 경제적 지위 등을 향상하기 위해 각종 사업을 수행하며, 이 과정에서 조합원은 배당을 받고 경비를 부담한다. 조합은 조합장의 전횡을 막고 설립 목적에 맞게 사업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총회·대의원회·이사회 등의 의사결정 기관과 재산 및 업무 집행의 적정성을 감시하는 감사기관도 두고 있다.

그러나 돈 봉투로 당선된 조합장을 뽑는다면 이 모든 것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마땅히 조합원의 이익으로 돌아가야 할 돈이 조합장의 투자회수금으로 새거나 정당한 사업 수행에 쓰여야 할 돈이 조합장 재·보궐선거 경비로 낭비될 수 있고, 이를 막는 조합의 견제·감시 장치 또한 무력해질 수 있다.

당장 내 주머니로 들어가는 달콤한 씨앗은 저질 조합장과 조합의 부실이라는 쓰디쓴 열매로 돌아온다.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결연한 의지와 불법에 참여하고 침묵하는 왜곡된 의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야말로 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박세국〈상주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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