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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음 (소설가) |
3월부터 영남일보 문화산책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수록할 글이니 소설가인 나를 소개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그러자면 내 엄마 이야기를 같이 해야 한다. 엄마는 1938년생이며 나는 그녀의 일곱 번째 자식이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백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고, 두 개의 제국과 세계대전이 지나갔다. 나는 엄마의 고단했던 삶과 내 삶을 달리 보이게 하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 엄마는 초등학교 졸업이 다인 그 시대 여자로 촌부의 삶을 살았다. 나는 엄마의 고단했던 시간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네 책을 열심히 읽는다. 네가 얼마나 고생하고 살았는지 읽으면서 생각한다.
엄마, 그 이야기는 다 설정이지 내 이야기가 아니야.
책을 출간할 때마다 책을 보내면서 엄마가 읽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엄마가 읽는 유일한 책은 성경이었다. 딸이 등단했다고 해도 자식이나 잘 키우라고 했고, 문예지원금을 받았다고 했을 때도 살림이나 잘하라고 해서 참 많이 서운하고 실망했었다.
엄마의 세계는 아들을 낳아야 여자의 존재감이 증명되던 세계였다. 엄마는 기필코 아들을 낳기 위해 나까지 줄줄 딸을 낳았다. 오빠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낳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의식 세계는 조선이었다. 나는 독립된 대한민국 사람이다. 대한의 독립과 6·25전쟁을 겪은 엄마는 3월1일 독립만세 기념일 아침에 나를 낳았다. 나의 피에 그 시간이 다 새겨졌음에도 나는 엄마의 시간이 싫었다. 나는 엄마와 다르게 생각하며 글을 쓰고 싶었다. 편견이나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나만의 세계와 높이가 있고 무엇보다 엄마의 세계와 엄격히 구분되길 바랐다. 나는 내가 살던 섬을 떠나 가장 먼 나라에 가보고 귀한 것을 보고 진귀한 것을 맛보고 소설을 썼다. 그동안 우리 모녀의 세계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엄마는 내 책을 읽으면서 딸의 시간을, 글을 쓰려는 마음과 일상을 견디는 고단함을, 아주 조금 이해할까. 어쩌면 내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딸을 작가로 인정할지도. 여자가, 딸이, 자식으로 증명되는 세계가 아니라, 다른 세계 하나를 창작해 가질 수 있음을.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엄마가 계신 고향 집을 생각한다. 그 집에서 엄마가 내 책을 한 글자씩 읽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 따뜻하고 안심이 된다. 한복에 꽃신 신은 엄마와 소설책을 손에 든 나는, 내 책 안에서 만나 서로를 안아주리라. 나는 아직도 책의 힘을 믿어본다.
박지음 〈소설가〉

박지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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