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여성 연예인 이중 잣대의 시대는 끝났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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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3 07:00  |  수정 2023-03-03 07:02  |  발행일 2023-03-03 제22면
'성희롱' 곤욕 치른 이경실
남녀에게 달리 적용됐던
이중잣대 시대 이제 끝나
연예인도 확실히 인지해야
또 다른 논란 예방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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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이경실이 성희롱 혐의로 고발당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라디오 방송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배우 이제훈 등과 함께 출연했는데 당시 이제훈의 상체 이미지가 화제에 올랐다. 그때 이경실이 "가슴과 가슴 사이 골 파인 거 보이냐. 저런 골에는 물을 떨어뜨려 밑에서 받아먹지 않냐. 그게 바로 약수"라며 "그냥 정수가 된다. 목젖에서부터 정수가 돼 우리가 받아먹으면 약수"라고 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한 대학교 학생이 이경실을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함으로써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의 기수에 이르렀다"며 경찰에 고발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여러 시민의 민원이 접수됐다고 한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성인지 감수성 강화로 인해 성적 대상화를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성 연예인과 남성 연예인 사이에 존재하던 이중 잣대가 사라져간다는 점을 나타내는 징후이기도 하다.

그 이중 잣대는 남성 연예인은 성적 표현을 함부로 해선 안 되지만 여성 연예인은 그래도 된다는 것이었다. 과거 '세바퀴' 같은 프로그램에선 중년 여성 연예인들이 젊은 남성의 몸이 섹시하다며 노골적으로 주시하거나, 심지어 직접 몸을 만지는 설정까지 방영됐었다. 만약 중년 남성 연예인이 젊은 여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주시하거나 만지기까지 했다면 즉시 퇴출됐을 것이다. 이렇게 남성은 해선 안 되는 일을 여성은 해도 괜찮았다.

여성의 성적 표현은 오히려 찬사를 받기까지 했다. 당당한 자기표현이라는 것이다.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에게 '걸크러시'라며 열광하는 흐름까지 있었다. 여성이 성적으로 억압됐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후 남녀평등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어났다. 그 결과 이러한 성적 표현의 이중 잣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 여성 방송인이 옆에 앉은 연하의 남성가수에게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 "어리고 순수하게 보이는데 키스 실력이 궁금하다"라고 했다가 논란에 휩싸였었다. 이게 변화의 출발이었다. 당시 여성 방송인은 "나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는데 우리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명했지만 더 큰 질타가 나왔다. 사람들은 "남성 방송인이 어린 여성 가수에게 똑같이 말했으면 퇴출당했을 텐데, 왜 여성은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그 후 박나래 인형사건이 터졌다. 박나래가 남성 인형에게 성적인 행동을 해서 논란이 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남성은 성적인 표현을 해도 되지만 여성은 안 되기 때문에 박나래가 비난받았다"는 인터뷰를 보도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남성 연예인이 여성 인형에게 성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되는데 왜 박나래는 되는가'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번에도 남성 연예인이 '젊은 여성 연예인의 가슴골에 물을 흘려 받아먹으면 약수', 이런 식의 발언을 하면 즉시 퇴출감인데 이경실은 왜 하는가가 논란의 출발점이다. 이게 공론장 논의가 아닌 경찰 고발까지 간 건 너무 지나쳤는데, 어쨌든 여성과 남성에게 달리 적용됐던 이중 잣대의 시대는 끝나간다. 연예인들이 이 부분을 확실히 인지해야 또 다른 논란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성별 구분을 떠나서 성적 대상화 자체를 조심해야 하는 시대다. 베테랑 방송인 이경실의 이번 발언이 방송가에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이 미약함을 드러냈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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