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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지〈작가〉 |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40세에 철도 위에 선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그는 달려오는 기차를 맞이하며 포효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동진시대 도연명은 벼슬자리에 오르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완전한 회귀를 실행한다. "세상이 너무나 '황폐'해 '몸과 마음이 버려'졌으니 괴롭고 슬퍼할 수만은 없다"면서 '귀거래'를 천명했다. 그때 41세였다.
불완전한 현실의 삶을 벗어나 귀향의 꿈을 꾸는 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마음속 뜻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후대인은 도연명의 선비다운 삶과 귀거래 실행을 숭상했다. 그래서 도연명 이후 관직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회귀하는 행동이나 사상을 '귀거래'라 부르게 되었다.
도연명의 귀거래는 예술 분야에서 하나의 토포스가 되어 회화 영역에서 꾸준히 그려졌다.
귀거래의 영향은 중국을 넘어 조선에도 전해졌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선 후기 대표 산수화가 정선과 말기의 천재 화가 장승업 역시 귀거래도를 남긴 바 있다.
'귀거래사'에 나오는 도연명의 고향은 가족과 이웃이 있는 작은 촌락이다. 농사를 지으며 자급할 수 있고, 그윽한 골짜기와 무성한 꽃나무로 상징되는 자연의 일부이다. 이는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연상하게 한다. 고향에 도착한 도연명은 "다시 가마를 타고 가서 무엇 하냐?"고 반문하면서 귀거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영화 속 영호가 돌아가려던 곳은 어디였을까. 물론 1990년대 영호와 400년대 도연명의 나이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당대 평균연령을 고려할 때 무리가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혼 가정의 영호든 방안에 자식이 가득 있었던 도연명이든 모두 삶에 대한 피로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도연명은 쌀 다섯 말에 향리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관직을 버렸다.
그는 염원하던 고향으로 돌아간 뒤 동진이 멸망하자 이름을 잠(潛)으로 개명한다. 반면 영호는 마지막을 각오하는 순간까지 천 원짜리 한 장을 놓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총을 겨눴다.
도연명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까닭은 길을 잃었으나 멀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호의 모습은 영화 관객의 입장에서는 졸속하지만 현실에는 더 빈번한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다시 돌아갈래"라고 소리치는 영호의 바람은 더 가깝지만 묘원한 곳에서 울리는 듯하다.정연지〈작가〉

정연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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