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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 영화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삶의 어느 시기를 기억나게 하는 영화는 반드시 있는 법이다. 아니라면 얼마나 메마른 인생인가. '브루클린'은 딸의 인생 영화다. 타지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던 20대 딸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울고 또 울었다. 그래서 '브루클린'은 내게 못내 마음이 아린 영화다.
1950년대 아일랜드의 소도시에 살던 에일리스는 혼자 미국에 간다. 취업 이민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고급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향수병에 걸려 힘든 나날을 보낸다. 그래도 야간대학에서 공부하며 적응해 가고, 자상한 이탈리아 남자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언니의 부고로, 슬픔에 빠진 채 아일랜드를 찾는다. 고향의 익숙하고 푸근한 풍경이 그리웠던 그녀는 머물기를 원하는 어머니를 두고서 다시 브루클린으로 떠날지 갈등에 빠진다. 고향에서 만난 아일랜드 남자와 어머니와 함께 살 것인지, 다시 머나먼 브루클린으로 돌아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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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에 포함된 이 영화는 아일랜드 작가 콜럼 토빈의 소설이 원작이다. 작가도, 감독도, 배우도 아일랜드 출신인 것이 흥미롭다. 그만큼 진실한 스토리와 연기, 연출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멜로드라마에 속하지만, 단순한 사랑 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멜로 속에 들어앉은 성장영화의 곧은 시선"이라는 평이 잘 드러내듯, 조용하고 수동적이던 소녀가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또한 아메리칸드림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몰려들던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모습과 아픔이 담겨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톤먼트'로 14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에일리스 역 시얼샤 로넌의 연기가 뛰어나다. 그녀의 깊이 있는 연기는 관객의 마음을 영화 속으로 끌어당겨 함께 울고 웃게 만든다. 토니 역 에모리 코헨의 연기도 매력적이고, 스타 배우 돔놀 글리슨의 연기도 좋다. 명배우 줄리 월터스와 짐 브로드벤트도 영화에 힘을 보탠다. 아카데미 작품, 여우주연, 각색상 후보에 올랐으며, 영국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다시 보고, 타지에 사는 딸에게 전화했다. 예전에 함께 '브루클린'을 봤을 때 힘든 일이 있었냐고,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물었다. 딸은 "영화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속내를 다 아는 친구처럼 위로해 주었다고. "인생이란, 새로운 곳에서 삶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고도 했다. 그렇게 인생 영화를 제대로 만난 딸은 씩씩하게, 고맙게 잘 살아가고 있다.
"당신의 과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랑을 만나면 그때 알아챌 거예요. 여기가 내 삶이란 걸." 에일리스의 마지막 대사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브루클린 다리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함께.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봄기운으로 물들면, 거기가 집이다"라는 어느 평론가의 평이 따뜻하다. 태어난 곳에 살든 떠나왔든, 사랑이 있는 곳이 고향이고, 집인 것이다. '고향의 봄'이 아니라, 지금 사는 이곳의 봄을 노래해야 하리라.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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