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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와 한일협정 반대를 외치는 시민사회를 짓밟았다. 그 한일협정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지난주 외신판이 또 '윤석열'로 떠들썩했다. 이젠 좀 조용했으면 좋으련만!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외신판에 '윤석열'만 떴다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김건희'에 '장모'에 '주술'에 '바이든'에 '언론 탄압'에 종류도 참 가지가지.
한데, 이번엔 좀 다르다. 남우세스럽다며 넘길 일이 아니다. 그 질이 매우 파괴적이고 반역사적이다. 윤석열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걸린 문제다.
'윤, 한일관계 개선 위해 강제 동원 방안 중요'(에이피), '한국,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비비시), '한국,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안 발표'(프랑스24), '한국, 제2차 대전 강제 동원 피해자들 반발에 직면'(도이치 웰레), '한일 분쟁 종식 위해 한국 기업이 지불'(자까르따 포스트)….
지난 6일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 동원 배상 해법을 내놓자마자 온 세상 언론이 국제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하나 같이 놀라운 속내를 그 제목으로 뽑아 올렸다. 현대사에서 전범국 대신 그 피해국이 배상한 일이 없었으니 희한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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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오늘은 대법원판결을 뒤집은 윤석열 정부의 셀프 배상, 그 역사를 따져봐야겠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대일선전포고를 했으나 불행하게도 1951년 전후 처리를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승전국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여기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지점이고 대일 굴욕외교로 들어서게 된 갈림길이었다.
대한민국은 1951년 일본과 따로 피해 배상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1952년 제1차 한일회담을 열었다. 이어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박정희가 밀실 야합으로 한일협정을 밀어붙였다. 낌새챈 시민사회가 1964년부터 한일국교정상화반대투쟁에 나서자 계엄령을 선포한 박정희는 1965년 제7차 회담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외치며 기어이 한일협정을 맺었다.
그게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었다. 애초 그 얼치기 '조약'과 '협정'은 정치적 합법성과 돈줄이 필요했던 박정희의 조급증이 담긴 매국 외교였다.
바로 그 '조약'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되었다. 제2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영문판 조약서의 'already null and void'를 한국은 '이미 무효'로 해석했다. 한일병합을 비롯한 모든 조약이 원천 무효란 뜻이다. 일본은 '이제 무효'로 해석해 효력 상실을 1945년 8월15일 한국 독립일로 잡았다. 일본은 침략과 식민통치를 이전 조약들에 따른 합법이라 우긴 꼴이다. 조약에서 서로 해석을 달리한다는 건 합의가 안 됐다는 뜻이다. 조약 체결 원칙은 상호 합의다. 합의 없는 조약은 국제법이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마저 자백받지 못한 이 대목에서 박정희는 이미 일본에 혼을 팔아넘겼다.
두 나라 관계를 다룬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의 합의가 없었으니 재산과 청구권을 다룬 '협정'이란 게 제대로 될 리가. '협정' 제2조는 두 나라 국가와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을 포함해 국민 간의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못 박았다. 이게 일본이 대한민국에 3억달러를 주고(제1조) 발을 뺀 결과다.
놀라지 마시라! 이 협정문은 일본이 왜 한국에 돈을 주는지조차 안 밝혔다. 동네 아이들 장난만도 못한 이따위를 국가 간 '협정'이라 불러왔다. 이걸 대한민국은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라 여겼고, 일본은 '독립축하금'이니 '경제협력자금'이니 따위로 불러왔다. '조약'에 침략과 식민지배란 역사를 집어넣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니 청구권을 다룬 '협정'에 청구권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규정마저 없다. 오늘 강제 동원 배상 문제의 뿌리가 바로 여기다.
박정희 정권 체결한 한일조약
해석 달리하면 합의가 안된 것
국제법상으로도 인정 못 받아
58년간 양국관계 걸림돌 작용
미래지향 열쇠는 한국이 쥐어
정부가 역사 바로잡겠다 하면
올곧은 국민이 거들고 나설 것
국제사회도 식민지 피해자 편
박정희는 이 야합을 통해 마치 일본에 배상금을 받아낸 것처럼 선전하면서 국가와 개인의 청구권 소멸을 일본한테 선물로 갖다 바쳤다. 58년이 지난 오늘까지 박정희의 1965년 한일협정 원죄를 따지는 까닭이다.
그로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1990년대엔 국가의 청구권만 소멸되었다고 우기더니 2000년대엔 1970년대의 보상 입법으로 개인 청구권도 소멸되었다고 뒤집었다. 그 혼란을 2018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 판결로 잠재웠다. 그게 다다. 그 판결을 따르면 된다. 독립국 대한민국 대법원판결을 일본과 협상하고 말고 할 일도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 행정, 사법으로 삼권분립을 못 박았고 따라서 행정부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은 사법부를 간섭할 수 없다.
근데 3월6일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이랍시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윤석열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난데없이 철 지난 박정희 유령을 불러냈다.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같은 뜬구름 잡는 말로 대법원판결을 뒤집을 권한이 없다. 짝사랑치고는 가히 파괴적이다. 상대는 침략과 식민지배마저 합법이라 우겨온 일본이다. 참, 결단 같은 근엄한 단어는 굴욕적 행위 앞에 붙이는 말이 아니다.
흔히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역사교육과 사죄를 좋은 본보기로 입에 올린다. 실제로 배상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독일은 전후 전승국들과 폴란드 같은 피해국에 국가 배상을 하고도 2000년 정부와 기업이 100억마르크(6조원) 기금으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설립해 전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 피해자 개인 배상을 했다.
일본에 견줘 독일의 도덕적 우위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국가란 개념엔 애초 그런 게 없고 둘 다 똑같은 전범국일 뿐이다. 다만 독일이 정상국가로 불리게 된 배경을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의 강제 노동자 개인 배상은 피해국 정부와 시민 그리고 국제사회 연대의 거센 압박 결과였다. 독일이 느닷없이 자선사업가로 나선 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독일은 일본에 견줘 상대가 만만찮았다는 뜻이다. 이게 처음부터 애걸복걸 매달리며 굴욕적인 꼴을 보인 대한민국 정부라는 상대를 지닌 일본과 차이였다. 윤석열 정부가 공부해야 할 대목이다.
한일관계는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면 된다. 늦은 출발로 여기면 그만이다. 악마적 '한일 기본조약'부터 손봐야 한다.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1965년 '조약' 때 따로 체결한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이란 게 있다. 그 문서는 분쟁 해결법으로 외교 경로를 통한 직접교섭과 양국 합의에 따른 조정을 명시했다. 현실적으로 '조약' 개정은 힘들더라도 제2조 '이미 무효'의 시점을 바로 잡는 '해석의정서' 체결은 정부 하기에 달렸다.
우리는 지난 58년 동안 온갖 굴욕을 잘 견뎌왔다. 두려워할 까닭도 없다. 장담컨대 정부가 역사를 바로잡겠다면 시민이 거들고 나선다. 우리한텐 건강한 시민사회가 있다. 1965년과 지금 대한민국은 다르다. 반식민, 반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흐름도 피해자 쪽이다. 일본을 독일처럼 정상국가로 만들 수 있는 열쇠를 우리가 쥐고 있다. 일본이 제 발로 역사의 무대에 오를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으므로.
침략과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우기는 일본의 신줏단지인 이 해석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영원히 풀 수 없다. 오늘 강제 동원 문제도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올곧은 역사를 외치는 시민을 계엄령으로 짓밟고 선전했던 그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란 게 오늘 우리가 보는 일본이다. 그 박정희의 혼을 대물림한 윤석열 정부가 2023년 떠들어대는 미래의 일본도 곡두일 뿐이다. 역사가 그 증인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대통령 윤석열이 뭘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대통령이란 건 아무 말이나 해도 될 만큼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역사관 없는 대통령,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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