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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10시쯤 찾은 북대구농협 조합장실. 안으로 들어서니 숲 내음이 풍겨 왔다. 조합장 당선 축하 화분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를 헤아려 보니 100개는 족히 됐다. 윤병환(67·사진) 북대구농협 조합장 당선인은 머쓱해하며 "보내지 말라고 해도 보내는 통에 막을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축하 화분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난처한 부탁'으로 되돌아오는 게 싫어서다. 물론 의례적으로 배달되는 화분을 모두 관리할 수 없어 버려지는 탓도 작용했다.
윤 당선인은 최근 둘째 아들의 결혼식을 양가 가족, 친지만 초대해 '작은 결혼식'으로 치렀다. 이 역시 축의금이나 화환이 들어와 발생할 수 있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윤 당선인은 제2대 대구시의원을 지냈다. 부인은 제7대 대구시의원이었던 이경애씨다. 사돈은 문성혁 전 해양수산부 장관(2019~2022)이다. 그는 "미풍양속이나 마땅한 도리로 여겨온 호의와 성의지만, 껄끄러운 청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며 "나는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지만 내가 받는 상황은 일부러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2015년과 2019년에 이어 올해까지 총 세 번이나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북대구농협 조합장으로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은 56%로 다른 두 명의 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쳤다. 선거기간 어깨띠를 걸치거나 플래카드도 내걸지 않았다. 이러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는 2년 전 자랑스러운 조합장상을 받았다. 이 상은 전국 1천200여 농·축협 조합장 가운데 농업·농촌 발전에 기여한 공로, 사업성과, 경영능력, 리더십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그는 탁월한 리더십과 경영능력으로 북대구농협의 사업실적 개선과 조합원 이익 증진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17년 취임 후 3년 만에 기록한 흑자 규모가 창립 50년 이래 최고였다는 점이 작용했다. 당시 그는 조합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헬스·사우나로 매출을 내던 산격지점은 직영이 아닌 임대로 바꿨으며, 하나로마트는 적자 품목을 없애고 인력을 대거 감축했다. 이사진은 표심을 잃을 테니 선거를 치르고 나서 구조조정을 하자고 했지만 그는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윤 당선인은 "농협은 농민과 농업·농촌을 돕는 게 가장 우선이다. 그래서 경제사업은 적자를 보는 구조가 된다"며 "적자에서 탈피하고 흑자로 전환한 성과가 높이 평가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욕을 많이 먹었는데 점차 이해하는 조합원이 늘고 지금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알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결단 덕택에 북대구농협은 2020년과 2021년 연속 1등급 경영 평가를 받았다. 그는 3선의 목표로 금융 리스크 관리를 꼽고 이에 매진할 계획이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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