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4.4

  • 정연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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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04  |  수정 2023-04-04 07:47  |  발행일 2023-04-04 제17면

정연지_증명사진
정연지〈작가〉

약 5천만 인류를 죽음으로 내몬 세계대전 막바지 1944년, 유대인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태어났다. 유대인으로서의 유산은 그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큰 화두를 던져주었고 볼탕스키는 뒷날 최정상의 쇼아(Shoah) 작가가 되었다.

2021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볼탕스키의 개인전이 열렸다. 유령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유령의 복도', 입었던 옷들로 메워진 벽이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부재를 연상시키는 '저장소:카나다',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전시장 조명이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하는 '심장', 165개 전구가 바닥에 널브러진 채 하나둘 꺼져가다가 기어이 마지막이면 어둠을 맞이하는 '황혼'….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별도의 캡션이 필요 없어 보였다.

볼탕스키가 죽음의 무게에 압도되는 경외를 형상화했다면, 우민미술상 수상작가 임선이는 죽음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이별가처럼 그려낸다. 소금바닥 위의 샹들리에가 깜빡인다. 빛은 구슬을 반짝이게 하고 잔잔한 반사광이 여운을 남기지만, 어떤 말로 치장해도 영원한 이별의 슬픔은 지울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확실하고 극단적인 가능성"이라 했지만, 사람은 보편적 사실인 죽음을 일상적으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도망치는 편이 자연스럽다.

톨스토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잘 드러낸다. 이반의 동료들은 그의 죽음이 자신의 불행이 아니었음에 안도하고 누가 그의 자리를 승계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둔다. 현진건 소설 '할머니의 죽음'도 유사한 서사를 보여준다.

어떤 예술작품도 인간을 죽음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볼탕스키의 작품은 자전적이고 작가의 배경이 되는 홀로코스트가 일반인에게 심리적 거리를 두게 만들지만 죽음은 사실 우리 모두의 미래다. 볼탕스키는 한국에서의 전시 제목을 '4.4'로 지었다. 그는 한국인이 가지는 숫자 4에 대한 이미지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오늘은 4월4일이다. 숫자 4가 이어진 오늘은 한 번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상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삶의 가치를 찾는 방법은 모호하지만 유한한 인간의 시간을 자각하게 된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지 더욱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연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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