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불확실성·리스크 여전…'디지털 金' 역할론 "글쎄"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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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1 07:35  |  수정 2023-05-01 07:38  |  발행일 2023-05-01 제12면
■ 비트코인은 안전자산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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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안전자산'이다. 경제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금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2020년 8월 금값은 급등에 급등을 거듭했다. 안전자산의 반대 개념은 위험자산이다. 통상 금값은 주가가 떨어질 때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식이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한 피난처'인 금으로 자산이 몰린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달 금융 불안이 커지면서 금값이 최고가를 경신할 때 비트코인(Bitcoin) 역시 급등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하는 '디지털 금'으로서 위치가 확고해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비트코인은 금처럼 안전자산이 될 수 있을까?

안전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고
외부변화에도 내재가치 안 흔들려야
14년 전 화폐로서 설계됐던 비트코인
가격변동성 커 실물경제서 사용 못해

올 1분기 71% 올라 금값 상승의 9배
투자자 보호장치 거의 없는 것도 문제


◆금과 유사하지만 다른 '디지털 금'

'안전자산'은 투자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이 매우 적은 것을 말한다. 금융투자의 경우 이자 지급이나 원금 상환이 불가능해지는 채무불이행, 시장상황 변화에 따른 시장가격 변동, 인플레이션에 의한 자산가치 변화와 같은 위험들이 수반된다. 하지만 안전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고 외부 변화에도 자산의 내재가치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금은 화폐 단위의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를 유지하는 '금본위제'에 따라 실물경제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 물론 금도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내릴 때가 있다. 하지만 대신 조정기를 거쳐 한번 안정화된 가격은 수개월에서 수년 이상 큰 변동 없이 유지된다.

금은 인간 문명이 존재했을 때부터 가치를 인정받은 대표적인 가치 저장수단이다. 긴 역사 속에 차곡차곡 쌓인 신뢰로 대체통용화폐라는 사회적 합의가 구축돼 있다. 금은 투자자산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장신구나 산업재로서의 효용가치도 충분하고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환금성도 높은 편이다. 금에 투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실물을 매매하는 현물 투자가 있고 둘째는 금 관련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파생상품 투자가 있다. 둘 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제도 장치가 마련돼 있다.

비트코인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블록체인 기술의 창시자가 만들었다. 탈중앙화라는 이념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 가치의 인정에 대해선 엇갈린다.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설계됐지만 높은 가격 변동성 탓에 실물경제에서 사용되지는 못한다. '화폐'에서 '자산'으로 초점이 옮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재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여전하다.

올 1분기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보면, 비트코인은 71% 상승했다. 같은 기간 금은 8% 오르는 데 그쳤다. 금값 상승과 비교해 무려 9배가 오른 것이다. 문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자금세탁 방지와 테러자금 조달방지에 초점을 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에 따른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가 도입됐지만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에만 초점을 맞춘 법률이다.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관리 감독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이런 점에서 비트코인은 안전자산이 될 수 없다. 희소성이라는 특징을 제외하면 비트코인은 금과 공통분모가 거의 없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년 뒤 채굴 가능한 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실물이 없는 디지털 자산인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2천100만개로 한정돼 있다. 현재 1천800만개 이상 채굴됐고 채굴량 조정 시스템을 통해 2140년쯤 모든 비트코인이 채굴될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이른 비트코인 안전자산론

권세환 KB금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전통적 금융시장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안전자산 대용으로 비트코인을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시장은 여전히 전통금융 대비 더 높은 가격 변동 위험을 갖고 있다. 불확실한 규제 리스크가 존재하며 '투자자산'이라는 사회적 합의조차도 모두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비트코인을 단지 희소성으로 디지털 금이나 안전자산으로 부르는 건 투자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현실적 접근법은 자본시장과 또 다른 성격의 고위험 투자상품으로 인정하고 포트폴리오 자산 분산 차원에서 투자를 논해보는 게 필요하다.

보통 안전자산은 가격 변동 방향성이 주가지수와 반대로 움직이거나 상관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금은 주가지수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거나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즉, 안전자산이라고 반드시 주가지수 하락 리스크 위험을 회피(hedge)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건 아니다. 단지 자산운영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채무불이행·시장가격 변동·인플레이션 등 리스크로부터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상품을 '안전자산'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하다.

'비트코인 안전자산론'이 나오는 이유는 비트코인 가격의 오름세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실제 달러 등 유력 법정화폐, CBDC(디지털 법정화폐)와의 잠재적 충돌 가능성과 강한 투기 성향 탓으로 정부의 경계 대상에 올라있다. 2021년 4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비트코인이 투기 수단에 불과하다"고 했다. 다음 날 이주열 전(前) 한국은행 총재는 "비트코인에 내재적 가치가 없다는 평가에 변화가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을 견제하는 정책이 언제 어디서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금의 대체재로 비트코인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시도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 2017년 '비트코인 자산성격에 관한 연구'(장성일, 김정연) 논문을 보면 금과 비트코인이 최소한의 자산가치에 대한 신뢰성에서 차이가 난다는 대목이 있다. 비트코인의 자산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선 비트코인의 기능적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실물도 존재하지 않고 자산의 실체를 증명할 최소한의 가치 신뢰성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만일 미래 가격변동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 화폐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다면 비트코인의 자산분류는 변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과 비트코인은 유사한 구조적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사회적 평가와 정책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탓에 금과 비교되는 안정성을 갖기엔 아직 이르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이 가격 안정성을 찾아 금을 대체하는 자산이 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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