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삶의 공간이야기]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의 공간적 대안…어린이보호구역 내 인도, 턱 높이 높여 자동차 진입부터 막자

  • 김경호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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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5  |  수정 2023-05-05 07:36  |  발행일 2023-05-05 제36면
십자형 교차로서 운전자 집중도 떨어져

최소 T자형 거리에 학교 위치해야 안전

펜스 설치돼도 차 무게로 파손될 수 있어

인도 턱 높이 자동차 바퀴 절반만큼 확보

도로 양옆에 녹지 조성해 속도 늦출 수도

[김경호의 삶의 공간이야기]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의 공간적 대안…어린이보호구역 내 인도, 턱 높이 높여 자동차 진입부터 막자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월8일 대전의 어린이보호구역 교차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인도에서 걸어가고 있던 초등학생 4명을 덮쳐 사상케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계 기관은 브리핑에서 음주단속을 더 자주 실시하고 야간에도 그 횟수를 늘리겠다는 대책 아닌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중앙분리대와 방호 펜스 등 울타리 시설도 추가 설치하겠다는 안도 추가 발표하였다. 어린이를 어떤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차원의 대안과 대책이 아니라 사고만 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속수무책의 모습이었다.

사람이 잘못하여 생긴 사고다 보니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겠으나, 반복되는 사고를 어떻게 방지하느냐에 대한 대책과 대안 모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람 사는 공간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필자로서 마음이 너무 아파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어린이보호구역 공간을 진단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공간의 대안도 제시하고자 한다.

어린이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은 제1조 목적, 제2조 정의, 제3조 보호구역의 지정, 제4조 보호구역 지정·관리계획, 제5조 보호구역의 지정·관리에 따른 재정조치, 제6조 신호기·안전표지의 설치, 제7조 도로부속물의 설치, 제8조 노상주차장의 설치 금지, 제9조 보호구역 안에서의 필요한 조치, 제10조 어린이에 대한 안전보행 지도, 제11조 보호구역에 대한 사후관리, 제12조 준용규정 그리고 부칙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어린이보호구역 관련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고만 나면 양형을 높이고 시설을 추가 설치하는 수준이 대한민국의 공공법이요, 공공디자인의 현실이었다. 사고는 공간에서 일어나는데 공간에 대한 조항이 없다는 것이 필자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삶의 구성요소에서 '위계와 질서'라는 공동항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간에 있어서의 우선은 안전에 있고 안전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위계와 질서가 잡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며 집에도 위계와 질서가 있어야 화목하듯이 도시에서도 공공 장소의 위계와 질서가 잡혀야 도시는 안전하고 평화롭고 쾌적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위계와 질서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인도와 차도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뉴욕의 하이라인이나 서울의 서울로처럼 인도와 차도의 물리적 차이(높이 차이)가 커지면 보행인의 심리는 자동차로부터 위협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보행자의 위치와 자동차의 위치는 달라야 한다. 만약 인도와 차도가 같은 위치의 수평면에서 이루어진다면 인도에서 걷는 보행자는 차도로부터 아무리 튼튼한 펜스나 볼라드가 설치되어 있더라도 자동차로부터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경호의 삶의 공간이야기]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의 공간적 대안…어린이보호구역 내 인도, 턱 높이 높여 자동차 진입부터 막자
어린이보호구역 인도 높이 제안 <김진희>

어린이보호구역만큼이라도 어린이가 등하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는 자동차로부터의 안전함과 보행의 평화가 보장되어야 한다. 아직 성장 중인 아이들은 성인보다 시야가 좁고 근거리와 원거리 초점 전환이 어렵다. 운전자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조심하여야 한다. 뉴스를 보니 늘 그렇듯 이번 스쿨존 음주운전 사망사고 이후 경찰은 음주운전 집중 단속을 하고 지자체 단체장들은 분주하게 주변 어린이보호 구역 점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음주운전자는 여전히 적발되고, 시설물을 보완한다 해도 사고를 100% 막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우선 사람, 인간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어린이보호구역 노란색 구역 안에서만큼은 우리가 어떻게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다림과 따뜻한 눈빛 대신 서두름과 경적을 울리진 않았는지 말이다. 운전자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다음은 공간이다. 즉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튼튼하고 높은 펜스를 친다고 하여도 말이다. 사실 가지각색의 울타리는 도시환경의 오염이 되었다. 정체 없는 디자인과 조잡한 마감은 아이들에게나 도시의 미관에 필요악이 된 지 오래다. 더구나 보행로의 과도한 울타리가 인접한 상가의 영업에 방해가 된다 하여 설치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람의 문제도 있지만 공간의 문제로 일어나는 현상이 크지만 공간을 책임지는 건축이나 도시, 조경 분야의 학계나 전문가의 목소리는 모깃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하는 분들은 목이 굵어서 목소리만 크다. 귀가 커서 국민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고 눈으로만 살피지 말고 직접 만져보고 두드려보는 용기도 필요한데 연예인처럼 인기에 집중하고 악수를 하면 손바닥이 아기손보다 더 곱다. 정치하는 분들에게 사람 사는 공간에 대한 교양과 지식을 대학교 4학년 수준까지는 가르쳐야 한다. 요즘 유튜브나 방송에서 인기 있는 건축가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지만, 문제의 나열이 많은 반면 그 해결책을 의논하고 토의하는 모습이 일방적이어서 양방향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다양한 장르와 층의 사람들이 함께 끝장 토론을 벌였으면 좋겠다. 건축가는 건축의 형태에 빠져 왔고 도시디자이너는 도시의 미관에 젖어 있다. 전문가는 넘쳐나고 이를 통합하고 조율하는 통문가는 부재중이다.

필자는 2022년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전검토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학교 건축의 한계점을 발견하였다. 제안서에는 학교 내의 건물의 증축과 개축, 신축은 있어도 주변의 교통 현황에 따른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고려와 이웃 주민과의 소통에 대해서는 부족함과 아쉬움이 컸다. 어떤 이는 그린스마트미래학교 공모에 대한 한계적 제안이라고 주장하겠지만 학생들의 안전과 이웃과의 조화는 주문하지 않아도 고려되어야 하는 기본 메뉴이다. 학교의 위치, 즉 장소성을 본다면 십자형의 교차로에는 학교를 두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T자형 거리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운전자의 입장에서 십자형의 교차로에서는 집중도가 떨어지고 불안해진다. 키 작고 불규칙한 동선의 어린이를 발견하기에는 교통표지판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펜스가 설치되었더라도 원초적으로 자동차의 진입을 막지 못하면 사고의 위험은 크다. 인도의 턱 높이를 자동차 바퀴의 2분의 1을 확보함으로써 자동차의 진입 자체를 못 하도록 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는 인도 위를 걷는 보행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공공시설에 투자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예산이 넉넉하여 안전펜스를 설치하였다 하더라도 자동차의 속도와 무게로 인한 충격으로 펜스는 쉽사리 파손될 것이며 보행자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자동차 바퀴의 2분의 1 높이의 인도는 아무리 빠른 속도로 자동차가 돌진하여도 그 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물리와 운동의 법칙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도로 양옆에 녹지나 나무 같은 자연 풍경이 풍부할 경우 교통 사고율이 더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운전자들이 운전 속도를 가늠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배열된 수직적인 나무들을 활용하는데 실제 나무의 식재 빈도가 높고 녹지의 환경이 갖춰진 구역에서는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도로 옆 녹지가 자동차의 속도를 줄어들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풍경이 주는 평화로움이 아닐까. 이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양쪽 길가에 녹지 환경을 조성하면 자연의 회복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일차적 혜택과 교통 속도가 감소하는 이차적 혜택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의 가로수는 큰 둥치를 자랑하는 일반적인 가로수가 아닌 보다 가늘며 계절의 변화를 가지며 밀도 있는 식재가 필요하다. 주의할 점은 스케치에서 보듯이 운전자나 보행자가 쉽게 눈에 띄는 가로수 높이의 지하고(BH)를 확보해야 한다. 현 어린이보호구역 내의 운전은 운전자로 하여금 긴장과 불안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녹지가 잘 조성된 구역을 지나면서 환경이 주는 쾌적함은 속도를 늦추게 되고 잠시의 운전피로를 풀어주며 아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답은 현장에 있다고 하였다. 책상 위에서 수치와 통계를 보고 내놓는 탁상행정의 보편적 대안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어린이보호구역 각각의 학교주변이 도로나 교통특성, 인접한 건물의 배치 등이 다를 텐데 어떻게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겠는가.

[김경호의 삶의 공간이야기]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의 공간적 대안…어린이보호구역 내 인도, 턱 높이 높여 자동차 진입부터 막자
김경호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필자가 원고를 준비하면서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한 자료를 법령에서부터 정부기관, 국회, 학회, 단체 등을 들여다보니 뻔한 내용으로 반복되는 구호만 외치고 있을 뿐 새로운 대안이나 지속적인 운동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면서 태어난 아이들까지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요, 희망이다.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천사이다. 우리는 천사를 위한 최소한 안전한 길은 보장해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곧 5월5일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다가오는 어린이날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안전한 나라, 행복한 나라, 미래가 밝은 나라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a30co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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