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10강·끝: 5월18일 - "문화적 동질성 가진 동아시아 도시와 교류해 지방소멸 극복하자"

  •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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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2  |  수정 2023-05-02 07:37  |  발행일 2023-05-02 제14면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공동 시민강좌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 대구생활문화센터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10강·끝: 5월18일 - 문화적 동질성 가진 동아시아 도시와 교류해 지방소멸 극복하자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영남일보 DB>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 10강·끝: 5월18일 - 문화적 동질성 가진 동아시아 도시와 교류해 지방소멸 극복하자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 큰 화두다. 수도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고, 정치인들은 필요할 때만 적당히 레토릭을 쓴다. 갈라치기가 유행인가 보다.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 사람들 문제이고, 지방 소멸은 지방 사람들 몫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아무도 믿지 말고 우리가 우리 지역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혁신도시부터 국가공단까지, 정부가 지자체가 정치인이 시도한 무수한 지방 살리기는 모두 실패했음을 인정하자. 지방 소멸에 가속도만 붙었다. '지방에 살아보니 못 살겠더라'라는 경험사례만 더 보탰다. 가시적 성과나 즉시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춘 정치적 계획, 물리적 지원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시민이 주체가 아니라, 대상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민이 주도하는 우리 지역 살리기 '운동'이 필요하다. 우선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동아시아의 도시들과 접속해보자. 그리고 상호의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시민을 연결하자. 이러한 과정 자체가 지역을 재발견하고 지역민의 마음을 재정립하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메가시티의 물리적 질량에 맞서 동아시아 도시의 문화적 정신과 이야기를 연결하고 재구성해 보자는 것이다. 효과나 성과에 연연할 필요 없이 생각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접속하고 연결해 보자는 것이다. '리좀'식으로 말이다.


경주·시안·교토 도시 정체성
오랜 교류로 전통·개성 가져
시민 주도로 지역 재인식해야



그 속에서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고,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곳에 살고 싶어질지도, 나아가 살기를 권하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우리의 접속과 연결은 효과나 성과 같은 수량 단어나, 실패와 성공 같은 포폄(褒貶) 단어로 형용할 필요가 없다. '접속과 연결' 자체가 우리 스스로 펄럭이는 작은 날갯짓이고, 또 그 자체가 우리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자본에, 권력에 매몰되지 않는 소소한 문화적 삶이야말로 '서울의 삶'이 흉내 낼 수 없는 우리의 삶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동아시아 도시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세계적으로 천년 수도는 다섯 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유럽의 로마와 이스탄불, 동아시아의 시안과 교토, 그리고 우리 지역의 경주이다. 동아시아의 천년 고도 경주, 시안, 교토는 이처럼 한·중·일 삼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도시이다.

경주는 기원전 57년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935년 경순왕까지 992년간 이어진 신라의 수도였다. 시안은 서주(西周)부터 당(唐)나라 시기까지 1천100년간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교토 역시 헤이안 시대부터 도쿄 천도까지 1천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세 도시는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다. 동아시아적 동질성에다 나름의 개성과 특징을 가진 세 도시의 정체성은 오랜 역사와 문화의 상호 교류로써 형성되었다.

세 도시의 현재 모습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슷한 면은 오랜 교류와 영향에서 비롯되었고, 다른 것은 도시 발전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로 다른 방향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세 도시를 대하는 우리의 느낌은 친밀하면서도 신선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어릴 때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추억도 함께 나누고 싶고 살아온 과정이 궁금하기도 하다.

철들 무렵부터 세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키웠다. 세 친구가 가장 친했던 시기, 즉 전성기만 보아도 추억거리가 많다. 아명이 서라벌, 장안(長安), 헤이안쿄(平安京)이다. 장안성을 모델로 한 계획도시인 것도 공통점이다. 서라벌의 아버지는 삼국을 통일하고 찬란한 황금 문화를 꽃피운 신라였다. 장안의 아버지는 11명이나 되지만 그 가운데 당나라가 제일이었다. 장안성은 인구 100만이 넘는 세계 최고의 국제도시였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자기 집을 가진 것처럼 헤이안쿄 시대부터 일본 고유의 고쿠후(國風)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여왕의 추억도 공유한다. 서라벌에는 선덕여왕, 장안에는 측천무후, 헤이안쿄에는 스이코여왕이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동아시아적 편견을 무너뜨린 의미 있는 여성 지도자들이었다.

세 도시를 오고간 수많은 사람, 그들이 실어 나른 수많은 생각과 솜씨들이 역사와 문화, 유적으로 남았다. 이 세 도시를 관통하는 공동의 문화콘텐츠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천년고도' 문화거리나 테마파크 같은 것을 조성해보면 좋겠다. 경주의 황리단길, 시안의 대당불야성 거리, 교토의 기온 거리에 세 도시의 영화를 재연하고 연결하는 문화표지판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황룡사 9층 목탑, 자은사 대안탑, 도지 5층 목탑을 한곳에 모아 이야기를 연결하면 멋지지 않을까. 선덕여왕, 측천무후, 스이코여왕을 접속하여 동아시아 여성 지도자를 톺아보면 서양 사람들도 깜짝 놀라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설렌다.

권응상<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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