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이기리의 '시인의 말'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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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1  |  수정 2023-05-01 06:56  |  발행일 2023-05-01 제21면

[송재학의 시와 함께] 이기리의 시인의 말
시인

낙엽을 쓰는 빗자루,

길가에 낙엽들이 쌓인다.

어떤 낙엽들은 무덤처럼 모여 있다.

저 안에 죽은 것은 없는데

무언가 죽었다고 믿게 된다.

불쑥 겨울이 온다.

길은 꽃과 풀과 낙엽과

죽은 것을

깔끔하게 지우고 쭉 뻗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다. 이기리 '시인의 말'

어느 시집에서나 시인의 말은 흥미롭다. 시처럼 중요하기에 대체로 시집 속에서 먼저 읽기 마련이다. 젊은 시인 이기리의 뻑뻑한 시집을 일독하고 나서 오랫동안 나를 간섭한 건 바로 시인의 말, 시집 중에서 맹렬하고 유니크한 부분이다. 이건 시가 될 수 있는 말, 혹은 시라고 해도 신뢰할 수 있는 문장이다. 시가 아니고 시적인 말이라고 했지만, 시의 정신을 품고 있는 이유는 "어떤 낙엽들은 무덤처럼 모여 있다. 저 안에 죽은 것은 없는데 무언가 죽었다고 믿게 된다"는 비범한 구절 때문이다. 예컨대 "한 번 물 위를 스치다가 영원히 내 눈에 붙들린 새의 이름(이성복)"처럼 시는 생의 한 부분을 정확하게 잘라낸 단면이다. 시적인 것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는 말과 겹치는 부분이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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