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마약문제,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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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2 07:31  |  수정 2023-05-02 08:18  |  발행일 2023-05-02 제13면
단속·처벌 치중땐 되레 중독자 양산
어릴 때부터의 철저한 마약 예방교육
체계적 치료·재활시스템 구축이 해법

이향이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얼마 전 국민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충격적인 마약사건이 발생했다. 강남 학원가 일대에서 집중력을 높이는 음료의 시음회라는 명목으로 마약이 든 음료를 나눠 준 뒤 이를 받은 청소년들의 부모에게 자녀가 마약을 복용한 것을 신고하겠다며 협박하고 돈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마약류 사건은 사용하거나 판매하려는 사람 사이에서 은밀하게 범죄행위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마약류 사용과는 전혀 무관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행된 유례없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범죄의 주 대상층이 청소년이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넘어 심각한 우려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마약류 중독문제는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것은 관련 현장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명백한 사실로 인식됐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체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마약류 관련 문제는 여러 가지 다른 국가적 사안에 비해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층적인 진단과 분석 없이 매년 검거되는 마약류사범의 숫자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늘 다른 사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오인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2022년 마약류사범 숫자는 1만8천395명으로 5년 전보다 약 1.5배 정도 증가했다. 이 숫자로만 본다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19세 이하 청소년 사범의 수는 481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20~30대 사범 비율이 전체 연령 중 거의 60%를 차지하며 만 15세 미만의 마약류사범도 지난해 41명에 이르는 등 마약류를 사용하는 연령층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다양한 신종마약류의 등장과 젊은 층의 마약류사용자 급증은 우리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니만큼 국가적 과제 중에서도 우선순위에 두고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검경합동 마약범죄 수사본부를 설치하며 여러 부처에서 마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분석이나 준비 없이 너무 다급하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진행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라고 하면 관련 사건 수사를 철저히 해서 더 많은 범죄를 찾아내고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것이 중요한 방향이 된다. 그런 강력한 단속, 처벌만으로는 마약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것이 다른 나라들에서도 앞서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약이라는 약물중독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개인의 의지를 월등히 넘어서는 문제로 단속, 처벌 이후 이들의 재범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중독자들이 치료받고 재활할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 도울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대처시스템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강력한 단속, 처벌이 오히려 마약류 중독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 어떤 체계적인 치료, 재활시스템도 예방대책보다 더 효과적일 수는 없으니 청소년, 젊은 층의 마약류 사용자 증가를 막는 것은 어릴 때부터의 철저한 예방교육만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쉽게 손댄 마약류로부터 남은 생애를 인질로 잡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또한 특정 기구, 특정인의 역할을 기대하기 이전에 우리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마약의 위협으로부터 본인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노력을 함께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노력이 더해진다면 우리에게는 아직은 조금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관심과 노력을 부탁드린다.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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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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