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뿌리, 문화 예술 중심지 달성 .4] 달성 문화예술 창작(상)…주민엔 문화 명소, 작가엔 창작 산실 '상생의 공간'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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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9 07:56  |  수정 2023-05-16 07:50  |  발행일 2023-05-09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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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다사읍 달천리 박산 자락에 위치한 달천예술창작공간은 작가들에게 창작을 위한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주민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와 소통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낡고 오래되어 제 역할을 잃어버린 도시의 쇠락한 장소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치환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고유의 장소성을 회복하려는 작업은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세계적인 흐름이다. 특히 자치단체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은 예술가에게 창작 공간을 지원하고 주민에게 문화적 혜택이 돌아가게 하며 도시 공간의 유기적 순환을 통해 지역 활성화 효과를 더불어 이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공간은 지역사회와 호흡을 같이한다는 특수성이 있으며 지역민이 생산 과정에 참여하고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이해되는 문화민주주의 이념과도 연관된다. 창작 공간의 존재론적 효과나 예술의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적 공간 확대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신뢰와 옹호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뿌리에서 태어난 새로운 가치 공간 중 하나가 달천예술창작공간이다.

금호강변 너른 들 바라보는 자리
폐교 매입 창작공간으로 새 단장
신진작가 역량 키우는 보금자리
지역민 참여 프로그램도 꾸준히
대구미술광장 등 운영 중단으로
예술 통한 지역 활성화 이목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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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작가의 작품이 내걸린 1층 전시실 모습(위). 달천예술창작공간에는 전시실, 작가 스튜디오 외에도 일반인 대상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한 세미나실, 다용도실 등을 갖추고 있다.
◆달천예술창작공간

달성 다사읍 달천리 박산 자락에 금호강변의 너른 들을 바라보며 서 있는 건물이 있다. 선명한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깔끔하고 반듯한 외관에 '달천예술창작공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름 그대로 달천마을에 자리한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다. 2021년 4월에 문을 연 달천예술창작공간은 대구시 기초 자치단체 산하 문화재단 가운데 달성문화재단이 처음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에게 창작을 위한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시민에게는 문화예술 향유와 소통의 즐거움을 제공하여 지역의 문화명소로 만들어 가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첫눈에 저절로 정겨운 마음이 든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원래 초등학교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1968년에 개교한 다사초등 달천분교였다. 1971년 달천초등으로 승격됐지만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서재초등 달천분교로 편입됐다가 1999년 9월에 결국 문을 닫았다. 이듬해 지역 미술인들은 폐교된 건물을 임대해 창작공간으로 활용했다. 개장 당시 박곡리의 '박' 자와 달천 분교의 '달' 자를 조합해 '박달예술인촌'이라 명명했다고 전한다. 서양화, 동양화, 조각, 디자인, 도예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인이 모여 전시 및 작업을 하던 박달예술인촌은 일반에게도 개방되어 있었고 매년 인근 주민들의 자녀를 위한 무료 미술학교도 열었다고 한다. 박달예술인촌의 자생적 문화예술 활동은 약 20년간 지속되었다. 이후 달천분교는 달성군이 부지와 시설을 매입하였고 새 단장을 거쳐 달천예술창작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달천예술창작공간은 2층 규모로 1층에는 상시 운영되는 전시실, 지역민과 방문객들을 위한 주민 활용 공간,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한 세미나실, 다용도실, 창고 등이 자리한다. 2층에는 입주 작가를 위한 스튜디오(1인실 4개·2인실 1개)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조각 등 대형작업을 할 수 있는 야외 공간도 마련돼 작가들에게 더욱 매력적이다.

거주 시설과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레지던시(Residency)는 신진 작가들에게 '꿈의 공간'이라 할 만하다. 입주 작가로 선발되면 일정 기간 동안 작업실과 거주 공간 등이 확보되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으며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달천예술창작공간 입주작가들에게는 10개월 동안 개별 스튜디오가 제공된다. 또한 프리뷰전, 개인전, 단체전, 교류전, 오픈스튜디오 등 프로그램 참여와 창작·활동지원금, 평론가 매칭, 홍보물 제작 등 작가로서의 창작 역량을 최대한 높이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일시적인 머무름이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레지던시 입주는 특별한 선물이자 기회인 것이다.

올해는 기조(도예), 배지오(설치), 임지혜(평면), 전수현(설치), 최영지(평면), 최종열(미디어) 6명의 작가들이 입주해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프리뷰전 '유난스러운 봄'은 오는 26일까지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앞서 제1기 입주작가로 김도경(평면)·김소라(평면)·김조은(설치)·김현준(입체)·이민주(평면)·이지원(평면), 2기 작가로는 김재홍(평면)·박두리(평면)·박지훈(미디어)·배혜진(설치)·이숙현(미디어)·이승희(설치) 등이 선정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현대미술에서 레지던시는 작가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의 산실인 레지던시는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문화 활성화, 도시재생 기능, 국내외적 문화교류 역할도 한다. 창조와 재생 그리고 소통이라는 순환하는 가치의 영향력은 근래 더 주목받으면서 현대미술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달천예술창작공간은 예술인과 지역민의 상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민참여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예술인들의 네트워크 환경 조성을 위한 교류와 연계도 달천예술창작공간 운영의 핵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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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예술창작공간 야외에 설치된 김구림 작가의 작품 '음과 양. 22-S. 존재와 허상'.
◆달성 예술창작 공간의 흔적

헐티재 아래 가창의 아름다운 정대리에는 고즈넉한 대구미술광장이 있다. 달천예술창작공간과 마찬가지로 1994년 폐교된 후 방치되어 있던 용계초등 정대분교를 리모델링하여 2000년에 문을 연 창작공간이다. 개관 당시에는 기성 예술가들에게 시설을 임대하여 창작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서양화, 동양화, 서예, 도예 등 사회교육 미술 교육원을 운영하는 지역의 문화센터로 기능했다. 2009년부터는 '대구미술광장 창작스튜디오'로 명칭을 변경하여 상대적으로 작업환경이 취약한 신진 작가들에게 활동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개별 작가의 작업 지원과 작업을 위한 환경을 지원하는 스튜디오 프로그램, 레지던시 교류전과 오픈 스튜디오, 개인 전시 및 단체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전시 프로그램 그리고 국제적인 감각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을 지원했던 것. 하지만 수년 전 민간에 매각된 이후 현재는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가창의 삼산리에는 가창창작스튜디오가 있었다. 1949년에 개교한 가창초등 우록분교가 1994년 폐교되자 2007년 창작 스튜디오로 활용하자는 대구현대미술가협회의 제안을 대구시가 받아들여 설립된 청년 예술가 창작 레지던시였다. 가창창작스튜디오는 오픈 다음 해 '2008 미술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전'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다른 지역의 레지던시 벤치마킹 사례로 떠올랐다. 2009년부터는 '해외작가 초청 레지던시' 사업을 추진해 유럽, 미국, 중국,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가창창작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게 됐다. 15년가량 운영돼 오며 매년 10명 이상 모두 200여 명의 국내외 청년 작가를 양성, 배출해 젊은 작가들의 역량을 키우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가창창작스튜디오는 올해 초 15년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지난해 대구시교육청이 우록분교 매각을 결정하면서 공간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아쉬움과 함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러 대안이 검토되고 있는 가운데 달천예술창작공간의 어깨는 조금 더 무거워진 듯하다. 출범 3년 차, 안정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달천예술창작공간에 이목이 집중된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달성문화재단

▨참고= 대구의 뿌리 달성, 달성문화재단, 2014. 달성 대구현대미술제(http://www.dalseongart.com). 달성문화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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