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까치구멍집’…영남대 민속촌에 남은 산간마을의 시간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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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30 10:19  |  수정 2026-05-30 11:50  |  발행일 2026-05-30
안동댐 수몰마을서 옮겨온 조선후기 전통가옥
사람과 소가 한 지붕 아래 살던 ‘인축동거형’ 삶의 흔적 고스란히
경산시·영남대 ‘경북도 유형문화유산’ 지정 추진
영남대 민속촌 까치구멍집 전경.  박성우 기자

영남대 민속촌 '까치구멍집' 전경. 박성우 기자

5월 축제 열기로 가득찬 영남대학교 교정을 지나 대학 본관 뒤편에 자리한 민속촌에는 수백 년 세월의 고요가 켜켜이 내려앉아 있었다. 지난 27일 밤사이 내린 비를 머금은 흙길을 따라 민속촌 안으로 들어서자 기와집 사이로 유난히 낮고 투박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번듯하게 치장된 양반가와 달리 어딘가 웅크린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이 집은 묘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엉으로 엮은 초가지붕 양쪽 끝에 난 작은 구멍, 거칠게 다듬어진 나무기둥, 그리고 사람과 가축이 함께 숨 쉬던 공간의 흔적들. 바로 '까치구멍집'이다.


이 집은 원래 경북 안동시 월곡면 도목동에 있던 영양 남씨 가옥이다. 영남대 박물관 이원영 실장은 "안동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자 1975년 영남대 민속촌으로 옮겨졌다"며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 건축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사 기록에 따르면 도목동에 남아 있던 까치구멍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전형적인 형태를 유지한 집이었다고 한다.


영남대 민속촌 까치구멍집 용마루 양끝에 뚫린 환기구 같은 까치구멍.  박성우 기자

영남대 민속촌 까치구멍집 용마루 양끝에 뚫린 환기구 같은 까치구멍. 박성우 기자

초가 지붕에 난 까치구멍집의 까치 구멍.  박성우 기자

초가 지붕에 난 까치구멍집의 까치 구멍. 박성우 기자

까치구멍집은 이름부터 독특하다. 용마루 양 끝에 뚫린 환기구가 마치 까치둥지처럼 보여 '까치구멍집'이라 불렸다. 산간지역 특유의 폐쇄적이고 집중된 생활 구조를 가진 '겹집' 형태다. 외부와의 연결은 최소화했지만 내부에는 생활에 필요한 기능들을 빼곡하게 담아냈다.


평소에는 관리 차원에서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지만 이날 취재 지원을 위해 임시 개방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실제 집 안으로 들어서면 구조는 더욱 인상적이다. 중앙 봉당을 기준으로 안방과 건너방, 부엌과 외양간이 이어진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집 안에 자리 잡은 외양간이다. 사람과 소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이른바 '인축동거형(人畜同居形)' 구조다.


겨울이면 사람의 온기가 가축에게 전해지고, 가축의 체온은 다시 집 안 공기를 덥혔다. 혹독한 산간의 추위를 견디기 위한 삶의 지혜였다. 외양간 위 다락에는 곡식과 생활도구를 올려두었다. 집 한 채 안에 먹고 자고 일하고 저장하는 삶의 기능이 모두 담겨 있었던 셈이다.


까치구멍집 내 코쿨.  박성우 기자

까치구멍집 내 '코쿨'. 박성우 기자

부엌과 봉당 사이 벽에는 '코쿨'이라 불리는 작은 구멍도 남아 있다. 경상도 방언으로, 표준어는 '고코불'이라고 한다. 등잔이나 관솔불을 걸어 양쪽 공간을 함께 밝히던 일종의 두등불 구조다. 전기가 없던 시절 최소한의 빛으로 생활 효율을 높이려 했던 서민들의 생활 감각이 엿보인다.


까치구멍집 들어열개문 방식의 창호. 박성우 기자

까치구멍집 '들어열개문' 방식의 창호. 박성우 기자

건축적으로도 이 집은 흥미롭다. 굵직한 나무기둥과 거친 자귀질 흔적은 화려함보다 실용성을 우선했던 산촌 민가의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의외의 세련미도 숨어 있다. 건너방과 대청 사이에는 문짝 일부를 접어 위로 들어 올리는 '들어열개문' 방식의 창호가 설치돼 있다. 일반 서민가옥에서는 보기 드문 고급 구조다.


집 뒤편 별채 역시 눈길을 끈다. 흙과 돌을 섞어 만든 토담집 형태로 방 두 칸과 방앗간이 딸려 있다. 맞은편에는 헛간과 칙간이 자리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작은 생활 공동체가 집 안에 압축돼 있는 셈이다.


경산시청 박영민 학예사는 "까치구멍집은 외부에 대해 폐쇄적이면서 내부 기능을 집중시킨 주거 형태라는 점에서 독특하다"며 "생활·취사·가축 사육 기능을 하나의 건물 안에 통합함으로써 혹독한 산간 환경에 대응한 생활의 지혜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까치구멍집의 진짜 가치는 '삶의 흔적'에 있다. 화려한 궁궐이나 대갓집과 달리 이름 없는 산간 주민들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만든 생활의 건축이다. 좁고 어두운 공간 속에는 자연환경에 적응해온 민초들의 생존 방식과 공동체 문화가 켜켜이 스며 있다.


영남대 민속촌 한켠에 남은 이 오래된 집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다. 안동댐 수몰과 함께 사라진 마을의 기억이자 경북 북부 산촌 사람들의 삶을 오늘까지 이어주는 살아 있는 민속 자료다.


경산시와 영남대는 현재 이 까치구멍집의 경북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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