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시인의 도시 대구, 그리고 '그들의 문학관'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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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1  |  수정 2023-05-11 06:50  |  발행일 2023-05-1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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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지난달 중순 정호승 시인을 만났다. 수성구 범어천에 개관한 '정호승문학관'과 관련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날 정 시인은 정호승문학관에 대해서는 되레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고맙고 영광스럽다"는 감사 인사말과 "영혼의 휴식처 같은 문학관이 되길 바란다"는 당부뿐이었다. 시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데도 무척 겸손해 보였다. 대신 그는 지금 이 시대의 문학과 시, 그리고 대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인터뷰 중에 그는 "대구에 이상화문학관이 마땅히 있는 줄 알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땅히'라는 말이 유난히 강조의 의미로 들렸다. 단어가 주는 정서와 메시지가 깊고 묵직했다. 그러면서 "정호승문학관을 계기로 현대시 문학사에 자리매김한 대구 시인들의 문학관이 많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구는 '시인의 도시'이다. 정 시인도 인터뷰 내내 이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강조했다.

민족시인 이상화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다. '봄은 고양이로다'의 시인 고월 이장희는 이상화와 함께 현대 시의 초석을 다진 작가다. 친일파 부호였던 아버지와 오랜 불화로 '세상을 등진 채 오랫동안 권태와 우울과 참회로 된 무거운 보퉁이를 둘러매고' 걸어간 그였지만, 시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고고한 시인'이었다. 광복 전 이상화와 이장희를 꼽는다면, 광복 후에는 2세대로 불리는 '꽃의 시인' 김춘수와 신동집이 대구 시단을 이끌었다.

경남 통영이 고향이지만 김춘수는 늘 "대구는 내 생애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이며, 내 문학의 고향"이라고 단언했다. 1947년 시동인지 '죽순'을 통해 대구와 인연을 맺은 후 그의 대표 시 '꽃'을 1952년 대구에서 창간된 동인지 '시와시론' 창간호에 발표해 '꽃의 시인'으로 불렸다. 1961년부터는 20년간 경북대와 영남대에 교수로 재직하며 그의 대표적 시론인 '무의미시론'을 정립해 발표했다. '대구의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집은 또 어떤가. 문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 그는 존재론적 철학이 강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기억되지 않는 천재 시인'으로 곧잘 얘기된다.

이상화·이장희, 김춘수·신동집으로 이어진 대구 시단은 후배 시인들이 이어가고 있다. 그들 역시 한국 시단에서 탄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대구는 시인의 도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문학관'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정 시인이 "자신의 문학관을 계기로 대구 시인들의 문학관이 많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문학관이 많이 생기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국내 문학관 중 제 역할을 못 하는 곳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우후죽순'이라는 수식어까지 덧대어지며 질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은 시장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돈이 안 된다'고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고 '무용지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문학은, 시는, 그 속에 시대정신이 녹아있다. 그 정신을 잇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문학관이다. 무엇보다 육체적인 배고픔이 해결되면 더 중요한 것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앞으로 인간은 정신적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문화적 양식을 찾을 것이고, 그 양식을 채울 수 있는 곳간이 바로 문학관이다.

대구는 시인의 도시다. 이상화·이장희, 김춘수·신동집 문학관에 대한 시민과 문단의 열망은 이미 무르익어 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첫 단추부터 끼워야 할 때다.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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