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분권' 장착해야 지방시대 열린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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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1  |  수정 2023-06-01 06:55  |  발행일 2023-06-01 제22면
토플러도 중앙집권에 의문
지방정부 경쟁이 혁신 엔진
경기 20년간 400만명 순증
수도권 일극정책의 후과
분권 개헌 다시 불 지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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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찬과 혹평이 공존한다. 찬양하는 쪽은 경제적 성과, 비난하는 쪽은 정치 퇴행을 들먹인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박 전 대통령을 후하게 평가한 인물이다. "민주화는 산업화를 이룬 후에야 가능하다.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개발독재는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이라고 상찬했다. 이랬던 토플러가 2001년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란 보고서에선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한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체제가 지식정보사회에선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제안했다. 시대의 행간을 정확히 읽은 토플러의 이유 있는 변신이다.

미국·독일·스위스는 지방세 비중이 40% 넘는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다. 특히 국가경쟁력 세계 1위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스위스는 분권국가의 표상이다. 연방정부와 26개 주, 2천636개의 시·군으로 구성되며 지방정부는 주민투표를 통해 세율을 자체 결정할 수 있다. 스위스 경제학자 르네 프라이 교수는 "스위스는 지방정부끼리 끊임없이 경쟁하니 잘 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분권체제가 경제혁신의 엔진이라는 의미다.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21년 기준 9만3천달러다.

국가뿐이랴. 기업도 다르지 않다. 일찌감치 분권과 수평적 네트워크의 효율성에 주목한 기업은 승승장구했다.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 애플과 구글이 대표적이다. 애플은 CEO 팀 쿡이 독단으로 정책 결정을 하지 않는다. 디자인 총괄, SW 개발, 마케팅 등 부문별로 의사결정권자가 나뉘어 있는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다. 개방적·수평적 조직문화는 구글의 특장(特長)이다.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한 이유는 권한 이양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였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 또는 공공 거래장부로 불리는 블록체인의 키워드도 정보공유와 분권 아닌가. 디지털 총아 NFT(대체불가토큰) 역시 소유권의 분점이다.

한때 한강 이남의 최고 명문이었던 경북대가 서울 중위권 대학에도 뒤처진 현실은 지방 황폐화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1960년 20.8%에 불과했던 수도권 거주 인구는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다. 경기도 인구는 2002년 12월 1천만명을 넘어선 후 20년 만인 지난달 1천400만명을 돌파했다. 반면, 대구경북 인구는 500만명 아래로 내려앉았다. 중앙집권과 수도권 일극정책의 후과(後果)다. 서울·인천 뺀 경기도에만 26.6%의 국민이 살고 있다니. 이러고도 지방시대? 자치와 분권?

올해는 온전한 지방자치, 실질적 지방분권 시대를 여는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지방분권 개헌이 절실하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동시 지방분권 개헌 국민투표가 무산된 이래 분권 개헌 논의는 침잠했다. 이제 다시 불을 지필 때가 됐다. 현행 헌법엔 지방자치 관련 대목이라곤 117조·118조 달랑 두 조항뿐이다. 지방자치가 시행되지 않았던 1987년에 개정된 헌법이니 자치와 분권을 제대로 다뤘을 리 없다. 새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지방분권 국가임을 명시하고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주재정권을 담아야 한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로 다음 달이면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한다. 균형발전을 견인할 기회발전특구도 시동이 걸렸다.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실현될 수 있을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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