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기억과 허상

  • 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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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1  |  수정 2023-06-21 07:58  |  발행일 2023-06-21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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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수려한 자연환경이 숨 쉬는 관광지에서 많은 사람이 사진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나는 다시 방문할 장소는 기억에 의존하고, 다시 찾기 힘든 곳이면 사진을 찍어본다. 다시 찾을 때면 과거의 흔적은 시각적 사실보다 추억에 담긴 이미지, 배경, 냄새 등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추상적인 기억은 당시 함께한 사람과의 대화나 기분을 바탕으로 약간의 허상을 가미한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포털이나 SNS 사진도 실제와 다를 때가 있다. 광고를 위한 효과나 동경을 바라는 개인 홍보는 숲 전체보다 나뭇잎 하나만 인위적으로 꾸민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양념을 가미한 사진들이 인간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종 SNS 매체는 글로 끼친 영향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동경할 수 있는 사진의 영향이 크다. 설령 사진이 사실과 다르다 하더라도 자신이 만족감을 느끼면 보이는 그대로 동경의 대상을 정한다.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였던 '부탄'이 스마트폰 보급으로 그간 오래 지켜온 행복을 동경의 피사체와 거래하며 100위권으로 하락했다. 이 사실은 인간이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만 동경의 대상으로 삼으며 정신적 요소보다 시각적 요소를 크게 의지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반면 공연은 시간예술이고 사진이나 영상 기록은 실연으로 유효하지 않다. 기록으로 남겨도 지나간 공연일 뿐이다. 그래서 예술인에게 삶의 터전인 무대는 가장 혹독한 곳이다. 다음 회차 공연은 있어도 이번 회차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관객의 인생에 맞닿은 예술 경험의 기억과 누적된 관람 역량과 싸워야 한다.

간혹 앙코르 등 촬영이 허락되는 순간은 모두가 약속한 듯 스마트폰을 꺼내어 소중한 추억을 담기 바쁘다. 촬영을 위해 실연을 놓치는 모습이 다소 아쉽다. 어쩌면 앙코르는 예술인이 공연에서 표현하지 못한 작품세계, 꿈과 내면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바둑이 취미라서 버릇이 있다. 오늘 공연을 진행하며 다음 공연 그림을 그린다. 공연이 끝나면 지난 상황을 복기하고 다른 방향을 그려본다. 자랑이 아니라 오늘의 공연은 오늘에 충실하고 다른 생각 없이 정해진 큐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를 알면서도 오늘 기억은 허상을 조금 더하여 추억으로 남긴다. 그렇게 허상에 다시 얽매여 미래를 그려본다. 어차피 정할 수 없는 미래라면 정확한 설계도보다 여유 있는 허상에 그림을 맡겨본다. 오늘 밤 꿈에서 수많은 기억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허상은 무엇일까 기대한다.

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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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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