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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패션을 제안한 오프 화이트의 2023 SS 컬렉션. 〈WGSN.com〉 |
20세기 중반 대표적인 모노크롬(하나의 색) 화가인 이브 클라인(Yves Klein)은 선명한 파란색을 지정하여 이를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라 하여 깊고 풍부하면서도 세련된 색감의 파란색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어떠한 형상과 재질 없이 오직 선명한 파란색으로만 자유로움과 생동감,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작품으로 매우 단순한 작품이지만 그 공간을 파란색으로 장악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색에 비해 파란색은 색조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베이비 블루, 페르시안 블루, 코발트 블루, 인디고 블루, 네이비 블루, 사파이어 블루, 스카이 블루, 오션 블루, 피콕 블루, 로열 블루 등. 오션 블루나 스카이 블루, 사파이어 블루는 파란 자연물에서 그 이름이 만들어졌겠지만, 파랑에는 역사적 이야기와 의미를 지닌 것도 꽤 찾아볼 수 있다. 현대 파란색 패션을 대표하는 데님이 젊음, 청춘을 상징하는 것과 달리 고대와 중세, 근세, 근대 초기까지 파란색은 고귀함과 과시적인 부유함을 의미하였다.
먼저 이집션(egyptian) 블루, 즉 이집트의 블루는 고대 이집트에서 칼슘이 함유된 석회를 첨가한 화학물질의 안료로 당시 제작이 어려워 소수에만 한정되어 사용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 유물인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이나 다른 가면에서도 황금색과 함께 사용된 이집션 블루를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파란색은 높은 하늘과 범람하는 물의 색으로 자연의 신성함을 나타내며 구하기 힘든 값비싼 것으로 지상의 신인 파라오를 중심으로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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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블루 색의 옷을 입은 루이 14세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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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 and Child with Female Saints |
이러한 파란색의 이미지는 옷, 액세서리뿐 아니라 도자기에도 비슷한 흐름으로 나타났다. 원자기호 27번의 원소로 푸른색의 금속물인 코발트는 중세 시대 이후 중국의 백자에 사용되어 흰색 배경에 코발트 블루의 무늬가 그려진 청화백자로 완성되어 유럽에 소개되었다. 이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었지만 유럽에서 재현할 수 없는 고귀하고 신비로운 코발트 블루의 매력에 유럽 귀족과 왕족들 사이 문화적 과시욕구를 충족시켜주어 그 인기는 드높았다. 중국 도자기에 사용된 코발트 광석으로 만든 파랑은 당시 제조 방법이 비밀이었고 유럽에서 생산하기 어려웠던 색으로 18세기 들어 코발트 블루 제조의 비밀이 유출되어 유럽에서 코발트를 사용한 도자기 생산을 시도할 수 있었다.
고귀한 이미지의 짙은 파랑은 프랑스와 영국 왕족의 패션 색상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그들의 초상화에서 우아하고 기품있는 이미지 연출에 한몫하였다. 시대가 지나 파란색 염색을 위한 재료와 기술이 발달하여 파란색의 직물 염색은 보다 쉽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데, 현재 청바지와 연관되는 인디고(indigo) 블루는 16세기에 새로운 파란색 염료로 등장하였다. 도자기의 파랑보다 저렴하게 염색할 수 있는 파란색 원단은 유럽에서 확산되었고, 이전에 비해 대중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인디고 블루는 그 이름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대 인도, 동아시아, 이집트 지역의 인디고페라 틴크토리아(Indigofera Tinctoria) 식물에서 파란색을 추출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인디고는 서늘한 기후의 유럽에서는 재배가 어려워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해야 했었고, 17세기 이후 아시아의 인디고를 대체할 수 있었다. 이후 특수 직조 기술로 매우 튼튼하게 만든 사선 조직의 면 트윌 원단에 인디고 염색을 한 것이 청바지 원단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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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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