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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지난 11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폐영식과 콘서트를 끝으로 12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여름 볕에 그을린 청소년들의 발그레한 볼에 개구진 웃음이 활짝 폈다. 카메라에 잡혀 경기장 스크린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질 때면 소년들은 자지러질 듯 환호했다. K-pop 공연은 K-컬처의 위상을 보여주듯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이번 대회에 참석한 소년들의 꿈이 끝까지 바스러진 것만은 아닌 듯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막간에 보인 스카우트 선서 "I promise that I will do my best to do my duty to God and my country(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나의 의무를 다할 것이며), to help other people at all times(항상 다른 사람을 도와주겠습니다)."를 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Draw your dream(너의 꿈을 펼쳐라)"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대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꿈을 선사했을까.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이 모여 야영 생활을 하면서 개척 정신과 호연지기를 기른다는 잼버리 본연의 정신을 실현해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애정을 갖고 마음을 모아 대회를 준비했나.
35년 전 개최된 88 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의 개회식 퍼포먼스를 떠올려본다. 흰 운동화를 신은 소년이 잠실올림픽 운동장의 긴 대각선을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가다 멈춰 서서 해맑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든다. 배경 음악이나 화려한 무대 효과는 없었지만 이 퍼포먼스는 모두에게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그 대회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숨 가쁘게 달려온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었을지 모르겠다. 전쟁 이후 '다시 한번 일어나보자' '잘 살아보자'는 목표를 향해 기업과 정부, 국민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이자 더 큰 도약을 다짐하는 과정이었다.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섬세한 미세공정이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과 성실함이 빛을 발해 64K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성공했던 날 대한민국은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Chae-bol(재벌)'이라는 영어 고유 명사가 생겨났고 전 세계 경영학자들은 한국의 사례를 본보기 삼아 연구하고자 논문을 썼다. 굴렁쇠 소년의 흰 운동화는 당시 전쟁을 딛고 건강하게 성장 중인 한국을 상징했다고 한다. 국제 행사 유치에 다른 불순한 의도는 없었는지 예산 집행은 투명하게 이루어졌는지 잘잘못이 있다면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열도, 다툼도 없었다.
목표에 마음을 집중하지 않으면 들풀 자라나듯 잡념이 들고 기운이 흐트러진다. 굴렁쇠 소년도 잠시 딴생각을 했다면 경기장 중간에서 굴렁쇠가 옆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필자 또한 잠시 방심하면 집중할 때 들리지 않던 온갖 가십거리, 주변에서 나를 조롱하는 목소리들이 들리고 마음이 요동친다. 해명하고 싶고 맞서 싸우고 싶을 때도 있다. 번잡한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가득해지면 이른 아침 출근길을 걸으며, 때로는 달리며, 마음을 한 곳에만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개인의 삶에서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목표를 이루지 못하듯 조직이나 단체, 국가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35년 전 88올림픽에 비해 2023년 잼버리 대회가 마치 딴 나라에서 열린 듯한 착각이 드는 것도 집중력 차이에서 온 것은 아닐까. 향후 개최될 국제 행사에서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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