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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
안타까운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처음엔 의아했다가 나중에는 화끈거릴 정도의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지난 2주간 국민 대다수가 느꼈을 감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가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행사는 끝났지만, 여진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대회 파행의 책임 문제를 놓고 '네탓, 내탓'의 설전이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게 뻔하다. 이미 잼버리 사태는 정쟁화된 모양새다. 여권과 야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분명 과실은 명명백백 밝혀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번 일은 국가 이미지가 실추된 사태인 만큼 반드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대회는 여러모로 미숙했다. 개막 초부터 야영 시설 미흡은 물론 먹는 물 부족 등 준비과정에서 부실함을 여실히 드러냈고, 폭염으로 인한 온열 환자 발생에 태풍까지 겹치며 결국 조기에 종영됐다. 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국내에서 치러진 대규모 국제행사 중 최악의 대회로 남을 공산이 크다. 32년 전 강원도 고성에서 치러진 잼버리대회가 호평을 받은 것과 비교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폐영식과 함께 열린 'K-팝 슈퍼 라이브'도 숱한 논란을 야기했다. 애초 콘서트는 지난 6일 새만금 야영장 부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후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날짜와 장소가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축구 팬들은 리그 운영 중 콘서트를 위한 경기장 사용에 대해 성토했다. 또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 차출과 관련한 쓴소리도 나왔다. 대회 졸속 운영에 이어 대책 마련 과정에서도 유기적인 소통 없이 일방적 처리로 잡음을 야기한 것이다. 대부분 문제는 항상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할 때 생겨난다.
콘서트는 성공적이었다. 폐영식에 참가한 140여 개국 4만여 대원은 뉴진스, 아이브, 있지, NCT드림 등 대세 아이돌 그룹이 등장할 때마다 환호하고,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했다. 우려했던 안전사고도 없었다.
부실한 시작에 비해 끝은 나쁘지 않았다. 정부도 "무난하게 마무리됐다"고 자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편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잼버리대회 피날레를 K팝 콘서트로 장식할 수밖에 없었을까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아서다. 세계잼버리대회는 캠프 활동이 바탕을 이룬다. 야영을 통해 개척정신과 호연지기를 기르면서 전 세계 친구들과의 우정을 나누고 심신의 조화로운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잼버리 정신이다. 주최 측은 아마도 대원들이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갔으면 하는 바람에 콘서트를 기획했을 것이다. 하지만 K팝 콘서트가 대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방 자치에 대한 불신이다. 각종 부정부패나 예산 낭비 사례가 불거져 나오면서 앞으로 다른 광역·기초단체의 예산 확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당장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요건이 더욱 엄격해지고 신공항 등 대규모 토목사업에 대한 반대의 여론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코 이번 사태가 각종 인프라 확충 등 지자체들이 공들이고 있는 사업의 자초로 이어져선 안 된다. 대신 반면교사 삼아 자정·자치 능력을 키워 지방 자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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