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디지털 심화 시대의 이정표, 디지털 권리장전

  •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
  • 입력 2023-10-13 06:52  |  수정 2023-12-12 10:51  |  발행일 2023-10-13 제26면
권리장전 법적 구속력 없어

디지털심화시대 쟁점해소

구체적 법·제도 정비 필요

부처 엇박자 생기지 않도록

대통령실·과기부 조율 중요

202310120100033040001421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작년 11월 출시된 생성형 AI인 챗GPT의 등장과 함께 4차산업혁명은 이제 디지털화(digita ization),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거쳐 디지털 심화(digital sophistication)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이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디지털 심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이 국민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규범과 질서에 관한 논의가 중요해지고 있다. 규범은 사회구성원의 행동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인간과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이 되는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디지털 기술, 산업, 사회를 혼란 없이 맞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규범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디지털 규범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지난 9월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유와 권리, 공정과 안전 등의 원칙을 담은 '디지털 권리장전'의 내용을 공개했다. 이미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의 '뉴욕 구상'을 시작으로 다보스 포럼과 G20 정상회의, 유엔 총회, 뉴욕대 '디지털 비전 포럼'에서 제시된 원칙이 집대성되어 전문, 6장, 28개 조로 구성된 디지털 권리장전이 제정된 것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제1장에서는 '디지털 공동번영사회 구현'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유와 권리 보장, 디지털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기회의 균등,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사회, 자율과 창의 기반의 디지털 혁신의 촉진, 인류 후생의 증진 등 총 5가지를 규정했다. 이어 제2장부터 제6장에서는 5가지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시민의 보편적 권리와 국가·기업·시민의 주체별 책무를 세부 원칙의 형태로 규정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유와 권리 보장(제2장)'을 위해 키오스크 등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디지털 접근의 보장', 자신의 정보에 대한 열람·정정·삭제·전송을 보장하는 '개인정보의 접근·통제', 플랫폼 노동, 원격근무 등과 관련된 '디지털 근로·휴식의 보장' 등을 규정했다.

특히, 해외와는 달리 AI 중심의 논의를 넘어 리터러시 향상, 격차 해소 등 디지털 전반의 이슈를 포괄했다. 또한 윤리·규범적 논의 외에도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고 국제 연대·협력을 통한 인류 후생의 증진 등을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공정한 접근과 기회의 균등'과 관련해 데이터와 디지털 저작물 등의 디지털 자산이 정당한 법적·정책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디지털 자산의 보호',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 등을 규정했다.

이번 디지털 권리장전은 사실 디지털 사회 규범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이 국가에 대해 가지는 권리를 지칭하는 권리장전이란 용어는 부적절하다. 이에 제명을 '디지털 공동번영사회의 가치와 원칙에 관한 헌장'으로 하고 '디지털 권리장전'을 약칭이자 부제로서 부연하기로 했지만, 이 약칭 역시 제명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점에서 '디지털 사회 헌장'이라는 약칭으로의 변경을 제안한다.

한편, 권리장전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디지털 심화 시대의 쟁점들을 해소하고 구체적인 법·제도를 정비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구체적 정책에서 권리장전과 다른 방향으로 부처 간 엇박자가 생기지 않도록 대통령실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조율 역할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