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법관은 오만한 수재 아닌 겸손한 사람이 돼야"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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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15 08:28  |  수정 2023-12-15 08:31  |  발행일 2023-12-15 제16면
대구서 30년 법조인으로 활동
이재동 변호사의 칼럼모음집
진보시각서 현정부 꼬집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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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일화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칼럼집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는 저자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어린 시절의 저자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다. <학이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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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지음/ 학이사/256쪽/1만5천원

대구에서 30년 동안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동 변호사의 칼럼집이다. 2년 넘게 영남일보에 쓴 칼럼 등을 모았다. 저자는 이슈가 된 사건과 일화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시간의 흐름과 늙음, 바람직한 삶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한다. 또 정치·경제·사회·종교·문화·철학까지 다양한 방면을 넘나들며 세상을 읽어가는 저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예순둘이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저자는 "나이가 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위인들의 수명과 비교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쉰이 될 때는 사십 대 후반에 사망한 시인 김수영이나 카뮈보다 더 오래 사는구나 하는 감회가 있었고, 환갑을 넘길 때에는 베토벤이나 도스토옙스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상에서 보냈다는 감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오늘은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살아온 시간을 무기로 삼아 살아갈 시간에 맞선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운 지는 오래지만 남은 시간이 늙어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당부한다.

저자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칼럼 '술 권하는 사회, 책 권하는 사회'에서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책 읽기를 통해서만 개인과 집단의 삶의 궁극적인 이상을 성립하고 이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세상이 몇 번을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주장한다.

'진보 성향'의 저자가 진보의 시각으로 현 정부의 역사·보훈 정책을 꼬집는 칼럼도 책에 담겨있다. '과거가 현재를 규정한다' 칼럼에서 저자는 "권력은 항상 역사를 건드리고 싶어 한다"고 전제한 뒤 "현 정부가 일제강점기 아래에서의 무장독립운동을 역사에서 축소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주로 그것이 좌익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또한 자유를 부르짖는 보수우익의 입장에서 중·러에 대항하는 한미일 동맹의 강화라는 명분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그 위협이 사라진 지가 이미 오래인데 느닷없이 반공을 내세우는 것도 참 뜬금없어 보인다. 과거를 바꾸려는 것은 시대 발전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는 정권의 입장을 정당화하여 결국은 현재를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임기가 정해진 민주정부에서 역사를 손보려는 무용한 시도를 할 것이 아니라 후세 역사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두렵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람직한 법조인에 대한 견해도 엿볼 수 있다. '세상 속에서의 법원' 칼럼에서 저자는 "오늘날 법관에게 부족한 것은 좋은 머리나 법률적인 지식이 아니라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의 팍팍한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우리는 법관이 좁은 시야를 가진 오만한 수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한 권력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의 판단에 끊임없이 회의하는 겸손한 사람이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이번 칼럼집은 저자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어린 시절의 저자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다. 사진 옆에는 '살아계셨어도 이 책을 읽지 못하실 어머니에게'란 글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저자의 마음이 새겨져 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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