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직터뷰] 김이진 대구염색산업단지 관리공단 이사장, 특허까지 보유한 박사 경영인…취임후 550억원 이상 원가절감 성과

  • 장준영,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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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0  |  수정 2023-12-20 08:22  |  발행일 2023-12-20 제25면

김이진직터뷰
김이진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이 재임기간 동안 실천한 경비절감과 국·시비 지원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국내는 물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설이 대구에 있다. 지금은 조금 빛이 바래긴 했으나 '섬유도시' 대구의 상징이자 자존심 같은 존재, 대구염색산업단지가 그렇다. 1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지역경제의 한 축이지만, 한때는 악취나 분진 등 대표적인 공해시설로 지목돼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입주업체의 다양한 자구노력과 대구시의 지원 등에 힘입어 소관부처인 환경부도 만족감을 표시할 수준으로 각종 지표가 개선됐음에도 불구, 아직 '인식의 벽'은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120여 개 입주업체를 이끌고 있는 김이진(66·명지특수가공 대표)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은 이에 대해 "부족하다면 시설개선이든, 검증이든, 홍보든 더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간의 노력을 몰라줘서 아쉽고 안타까울 법도 한데 의외로 담담하다. 40년 정도를 '섬유인'으로 살아온 김 이사장의 스타일은 전형적인 직진형. 시쳇말로 '빠꾸'가 거의 없다. 핑계나 변명보다는 다짐과 실천이 우선이다.

# '직진의 힘'은 자립심에서 비롯됐다

김 이사장을 좀 아는 사람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덩치는 작아도 배짱과 추진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고민과 판단까지는 신중하나, 일단 결정되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다. 그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경상도 말로 기마이가 좋아, 주위 사람 상당수는 그가 금수저여서 고생을 별로 모르고 살아왔을 것으로 지레짐작한다. 정미소집 아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어릴 적 어느 순간 급격히 가세가 기울면서 청소년기 무렵부터 자의 반 타의 반 스스로를 챙겨야 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선택에 따른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하는 고달픈 상황을 일찍 마주하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립의 길은 만만치 않다. 봉산초등·장기중을 졸업한 뒤, 인문계를 고사하고 동지상고를 다닐 때부터 사실상 학업과 생계를 병행해야 했다. 힘든 나날이 계속됐지만 가슴 한쪽에서 꿈틀대는 야망과 욕심은 포기를 모르는 강인함을 심어줬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그는 우여곡절 끝에 영남대 대학원 섬유공학과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며 공부와 연구의 일단락을 맺는 집념과 열정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특허를 갖고 있는 박사 경영인은 업계에서 매우 드물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섬유 및 화공을 공부했고 직장생활도 20대 중후반 무렵 섬유회사에서 시작했으니 절반 정도는 직장인으로, 나머지는 경영인으로 '섬유짬밥'을 먹은 지 40년 세월이 흘렀다. 당연히 공정이나 업계 사정에 밝을 수밖에 없었다. 40을 훌쩍 넘긴 나이에 회사를 꾸려가면서 공단운영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건 아니지 싶은데?' '저건 뭔가 잘못된 계산 같은 데?' 등과 같은 의문부호는 이사장직 도전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공적인 자리는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자 지론이다. 지난 7일 수상한 2023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섬유패션인 대상(경영혁신 부문)을 비롯, 임기 내 받은 각종 상은 김 이사장의 판단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군말 없이 증명했다.


상·하수도 요금감면 관철시키고
국비·시비 480억원 지원받아
악취 방지시설 투입…오염저감

경쟁입찰 등 통해 발생한 재원
업체별 증기·폐수 요금 감면 등
전부 입주업체 지원에 사용

인근 주민 대상 공단 개방 행사
소통·화합 이미지 개선 큰 역할

그의 오늘 뒤엔 한눈에 반한 부인
특유의 뚝심 섬유업계 '작은 거인'

'대한민국 섬유패션인' 대상 수상



# 모범답안은 항상 현장에 있다

김 이사장은 3수 끝에 2018년 제14대 이사장으로 당선됐고 2021년 재선에 성공했다. 초선 때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그는 임기 초반 견고한 관행 및 기득권과의 싸움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 역설적으로는 그의 존재감을 드러낸 기회이기도 했다. 외부에서 비롯된 감사요구가 잇따르면서 공단에는 한바탕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오해와 억측, 음해와 시기가 난무하는 거친 분위기 속에서 그를 지탱한 것은 원리원칙과 정도경영이었다.

김 이사장이 주력한 분야는 원가절감 및 국·시비 지원과 환경 부문. 관행을 바로 잡고 경쟁입찰 등을 통해 발생한 재원은 업체별 증기·폐수 요금 감면 등 전부 입주업체 지원에 사용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무던히 애를 썼다. 재임 기간 동안 발전 분야를 비롯, 폐수처리 분야·유연탄 분야·보험 분야에서 총 550억원 이상의 원가를 절감하는 성과를 일궈냈다는 것이 공단 측의 설명이다. 부조리나 독점에 따른 폐해 등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안이 상당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거센 저항과 반발은 당연했다. 해외출장을 포함, 현장에서 확인하고 자문회의 등을 거치면서 합리성과 효율성, 그리고 정직함으로 승부를 걸었고 공익을 실현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국·시비 지원에서도 그의 역량은 빛을 발휘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입주업체의 경영난이 심화되자, 그는 대구시와 국회의원 연석회의나 대구상공회의소 경제동향보고회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업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줄기차게 지원을 요구, 상·하수도 요금 감면을 관철시켰다. 또 국·시비 480억원을 받아 악취 방지시설에 투입, 먼지나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 82%를 저감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체감이 가능할 정도로 개선된 공단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김 이사장은 인근 주민 등을 대상으로 공단 개방행사를 수차례 가졌다. 소통과 화합을 위한 행사는 이미지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

#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웃어야 한다

좀처럼 웃지 못했고 웃을 수도 없었던 홀로서기는 20대 후반 부인 강숙기(65)씨를 만나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단숨에 풍요로울 수는 없었으나 안정감과 함께 심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눈에 반했다"고 했다. 눈빛이 살아있고 사람이 바르더라는 것이 이유였다. '일하고 결혼했고 술하고 사랑했다'는 그의 단골 레퍼토리가 비극적이지 않은 것은 강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 들어 부인이 좀 많이 아팠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고 고백했다. 돌이켜보니 잘해준 기억이 별로 없더라는 것이다. '앞으로 잘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여전히 서툴기만 하다. 40여 년 전 대구시 북구 침산동의 한 전셋집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 이후 앞만 보며 달려왔다. 직장생활과 수학과외를 병행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부부가 같이 꿈을 키웠다. 슬하에 큰딸과 띠동갑인 셋째딸까지 딸만 셋을 둔 김 이사장은 자칭 '딸바보'다. 딸들뿐 아니라 사위들과도 각별하다. 함께 웃어야 진짜로 웃는 것이기에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꽤 오래전부터 삶의 목표였다. 가족은 물론, 회사와 공단 관계자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김 이사장이 운영 중인 명지특수가공은 직물, 편조 원단 및 의복류 염색가공업체다. 그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회사다. 회사원에서 대표가 된 전환점이자, 친구들의 정성과 응원이 집약돼 있어서 더욱 그렇다. 창업자금이 빠듯했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흔쾌히 부족함을 메꿔준 친구들의 고마움은 지금도 감동이라고 했다. 경영이 본궤도에 오른 뒤 이자까지 쳐서 갚으려 했지만 원금 이외는 받지도 않아 마음의 빚은 여전하다. 그는 가족·회사·공단 가운데 회사를 1순위로 꼽았다. 다소 의외였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논리에는 어느 정도 수긍을 했다. 몸담고 있는 회사가 잘돼야 가족 및 구성원들의 걱정과 근심이 줄어들고, 각각의 회사가 잘 돌아가야 공단 전체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김 이사장은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별다른 후회는 없다. 자식들도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만큼 장성했기 때문에 이제 집사람 건강만 챙기면 큰 걱정은 없다. 회사도 안정적이다. 공단은 이전이라는 대역사를 앞두고 있어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임기 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하기에 염색공단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낸 이사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장준영 논설위원 changc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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