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칠곡형 K-할매 콘텐츠

  • 마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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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5 06:53  |  수정 2024-02-05 06:54  |  발행일 2024-02-05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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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준영기자 (경북부)

경북 칠곡 할머니들로 구성된 할매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인기가 과히 폭발적이다. 지난해 8월 정식 데뷔해 지역 축제와 각종 행사에서 실력을 뽐내며 불과 수개월 만에 팬클럽까지 생기더니 이제 세계 주요 외신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KBS 인간극장에도 출연하며 연예인급 인기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령 걸그룹으로 성장한 '수니와 칠공주'는 리더 박점순씨를 비롯해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할머니 여덟 분으로 구성돼 있다.

'수니와 칠공주'의 인기에 힘입어 현재 칠곡에는 후속 힙합 그룹들이 속속 태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15명이 모인 평균연령 88세의 혼성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가 결성됐다. 또 13인조 할매래퍼 그룹 '어깨동무'가 새롭게 결성돼 활동 중이며, 15인조 할매래퍼 그룹 '텃밭 왕언니'도 창단을 준비하고 있다. 랩에 소질 있는 공무원과 사회복지사도 트레이너로 자청하고 나섰다. 이들은 음악 지도는 물론 대구 서문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의상과 모자·액세서리 등 소품도 직접 챙기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칠곡 할머니들의 활약에 세계 주요 외신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칠곡 할머니를 'K-할매', 이들이 펼치는 활동을 'K-할매 콘텐츠'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할매 힙합의 고향인 칠곡에서는 전국 최초로 랩을 활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정규 교육과정에 랩을 채택해 어르신들에게 일주일에 두 차례 랩을 가르친다. 반복되는 가사를 암기하고 간단한 손동작으로 춤을 추는 랩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며 전문의는 랩을 적극 장려하기까지 했다.

급기야는 대한노인회가 칠곡할매래퍼 문화를 받아 전국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이면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부지불식간 고령 인구 1천만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던가. 고령화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라봐야 새로운 지평을 열 가능성이 높다. 시대변화에 맞게 활용할 때 악재는 호재로 바뀐다. 늙음이 활력으로 전환되면 직접적인 생산 연장·추가 소비부터 간접적인 복지 강화·조세 확충까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준다.

현상은 위기로 다가와도 기회로 바꾸는 게 승자의 법칙이다. 악재는 역발상으로 활용하고 호재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그 해법을 칠곡형 K-할매 콘텐츠가 제시했다. 대한민국 할매들이여, 모두 일어나 랩을 때리자.

마준영기자〈경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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