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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판타지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켄 리우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 켄 리우는 그의 대표작 '종이 동물원'으로 2012년 세계적 권위의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휩쓸며 국내에서도 친숙한 작가다.
이번 단편집에는 당나라 '섭은낭전'을 모티브로 한 표제작 '은랑전'을 포함해 총 13편의 SF물을 수록했다. 특히 켄 리우는 SF를 통해 현재를 조망하고 근미래를 예견한다.
단편 '추모와 기도'는 총기 난사로 희생된 한 여학생과 그 주변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죽은 딸을 기억하기 위해 여학생의 부모는 온라인 조문을 받는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사이버 공격이 시작된다. 급기야 죽은 딸의 시신을 가상의 영상으로 조작해 '밈화'시키면서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이를 막기 위한 온갖 보안 방법을 동원하지만 조롱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가족은 해체되고 피해자들은 더 큰 상처만 받는다. 켄 리우는 인물의 인터뷰 형식으로 소설을 풀어내며 현실감을 높인다. 그러면서 AI, 딥페이크 등을 통한 가상현실의 사이버 테러 등이 어떻게 현실에서 악용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인터넷 분탕꾼(troll)과 분탕질(trolling)은 국내에서도 최근까지 주목을 받아온 만큼, '추모와 기도'는 눈여겨봐야 할 작품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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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지음/장성주 옮김/ 황금가지/504쪽/1만8천원 |
또 다른 단편 '비잔티움 엠퍼시움'은 국제 분쟁 난민들의 극한 상황을 슈트를 통해 몰입 체험할 수 있는 근미래를 소개한다. 동정심을 자극해 기부금을 모아 '국경 없는 난민회'를 운영하는 소피아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기부금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방식의 새로운 플랫폼을 주도하는 탄젠원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쟁 난민 체험의 상품화와 플랫폼의 권력화 등 첨단 기술이 끼치는 미래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생생하게 다룬다.
'진정한 아티스트'도 창작가의 고뇌와 노력이 아닌 AI를 통해 독자의 니즈에 맞춰 창작물을 만들게 되는 놀라운 미래를 그린다. 이미 그림, 음악, 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창작자가 AI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 AI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활용될지 켄 리우의 상상력을 통해 예견한 작품이다.
켄 리우의 강렬한 역사 의식도 이번 단편집에서 엿볼 수 있다. '맥스웰의 악마'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차별과 박해를 다룬다.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일본군의 잔인한 실험도 현실감 있게 드러낸다. 전 세계 분쟁 지역의 학살과 이에 연결된 국제 구호단체 간의 커넥션을 다룬 '비잔티움 엠퍼시움'도 켄 리우의 역사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밖에 기후 위기로 수몰된 지구의 모습을 그린 '요람발 특별 기고', 외계 생명에 대한 불안과 경의에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녹여낸 '환생', 미지의 우주에 관한 도전적 상상을 담아낸 '일곱 번의 생일', 삼국 시대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를 독특한 세계관으로 새롭게 입혀낸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흑 표범' 등도 켄 리우의 놀라운 필력과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펼쳐진다. 수록작 중 핵폐기물을 소재로 다룬 '메시지'와 표제작 '은랑전'은 영상화 판권이 계약되어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켄 리우는 서문에서 "이번 단편집의 이야기들은 첫 단편집 '종이 동물원'에 실린 이야기들보다 여러모로 훨씬 더 쉽게 골랐다. '뭔가 보여 줘야 한다'라는 부담감은 없었다. 상상 속 독자들에게 '최선'의 단편집을 선사할 목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고를지 고민하느니, 차라리 나 스스로 가장 즐겁게 쓴 이야기들을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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