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쩌다 특수교사 : 자꾸 하다 보면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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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8  |  수정 2024-06-18 08:15  |  발행일 2024-06-18 제17면

[문화산책]  어쩌다 특수교사 : 자꾸 하다 보면
박일호<작가·특수교사>

수현이는 얼마 전 면접을 통과하고 버스정류장을 청소하는 회사에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내버스로 출퇴근을 해야 했기에 일주일 전부터 대중교통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버스 타는 게 뭐가 어렵다고 훈련까지 하느냐?'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중교통 훈련은 학생들의 안전과 취업 성공 여부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현장실습 전에는 꼭 해봐야 합니다.

제가 학생들과 했던 대중교통 훈련 방법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1단계로 '탐색'입니다. 사전에 학생과 함께 지도 앱으로 목적지를 검색해 봅니다. 버스나 지하철 중에서 어느 것이 동선이 짧고 시간이 덜 걸리는지 비교해서 선택한 후, 노선을 미리 탐색해 보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동행'인데요. 선생님과 함께 집과 직장을 오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봅니다. 초행길에 혹시 모를 비상 상황들을 대비해서 선생님이 동행하면서 하나하나 지도합니다.

3단계는 '잠행'입니다. 요건 선생님이 학생 몰래 뒤에 따라가면서 잘 가는지 지켜보는 단계입니다. 일부러 멀찍이 자리를 띄우고 앉아 지켜보다가 녀석이 실수로 정류장을 지나친다 싶으면 잽싸게 벨을 눌러주기도 합니다. 잠행이 제일 재미있는 단계입니다. 4단계는 '임무 수행'입니다. 회사 주소로 혼자 찾아가서 인증 사진을 보내면 합격입니다. 학생들이 보내오는 사진들 속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뭔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그 얼굴에 뿌듯함과 성취감이 잔뜩 묻어난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받고 나면 제 마음도 덩달아 뿌듯해집니다.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이처럼 이렇게 전공과 친구들은 사회로의 첫걸음을 뗍니다.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자꾸 연습하다 보면, 버스카드를 어디에 찍어야 할지도 모르던 친구도, 엉뚱하게 벨을 눌러대던 친구도, 어느새 익숙하게 타고 내립니다. 그렇게 대중교통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점점 직장인의 면모를 갖춰 갑니다.

함께 지도하는 제 마음도 성장합니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에 동행합니다. 일주일 만에 될지 걱정도 됩니다. 학생이 미덥지 않아 몰래 미행하면서 마음을 졸입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자꾸 하다 보니 친구들을 향한 신뢰도 점점 쌓이게 됩니다. 자꾸 하다 보면 어느덧 이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해 있습니다.

수현이와 동행을 하다 버스에서 먼저 내려야 했습니다. 조용하게 정적이 흐르는 터라 작게 속삭이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수현이가 아주 우렁차게 답합니다.

"선생님도 안녕히 가세요~!"

차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합니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수현이를 보면서 '대중교통 예절도 가르쳐야겠구나' 생각합니다. 살짝 민망했지만 그래도 싫진 않습니다. 선생님께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착한 마음이 참 고마우니까요. 자꾸 하면서 교통예절도 금세 갖추리라 믿어봅니다.
박일호<작가·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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