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궁궐의 고목나무, 조선 4대 궁궐 古木의 삶을 들여다보다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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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21  |  수정 2024-06-21 08:19  |  발행일 2024-06-21 제16면
'궁궐의 우리 나무'에 이은

박상진 명예 교수의 신간

'고목 위치 지도' 답사 도와

[신간] 궁궐의 고목나무, 조선 4대 궁궐 古木의 삶을 들여다보다
봉모당 앞뜰에서 만날 수 있는 규장각 향나무. 수령 750~760년으로 추정되며 현재 받침대 15개가 괴어져 있다. <눌와 제공>
[신간] 궁궐의 고목나무, 조선 4대 궁궐 古木의 삶을 들여다보다
'동궐도'에 그려진 규장각 향나무. 당시에도 기둥 12개로 받쳐진 모습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신간] 궁궐의 고목나무, 조선 4대 궁궐 古木의 삶을 들여다보다
박상진 지음/ 눌와/356쪽/2만4천800원

창덕궁의 창건 당시 건물은 모두 사라졌지만, 조선 개국 이전부터 살아온 향나무는 지금도 규장각 봉모당 앞뜰에서 볼 수 있다. 창경궁 남쪽의 선인문 돌다리와 명정전 행각에는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역사를 지켜봤을 회화나무 2그루가 자란다. 고목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후대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궁궐에서 자란 나무는 역사의 단편이면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옛사람의 삶을 증명한다.

이 책은 궁궐 나무답사 붐을 일으킨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신간이다. 2001년 출간해 스테디셀러가 된 '궁궐의 우리 나무'가 궁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나무 수종의 생태 및 역사·문화를 폭넓게 해설했다면, '궁궐의 고목나무'에서는 조선 4대 궁궐의 고목나무를 본격적으로 살펴본다. 추정 수령부터 나무의 내력, 관련 일화 등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나무학자의 전문지식과 상상력이 곁들여지면서 관람 공간이었던 궁궐은 나무와 공간,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현장으로 생생히 되살아난다.

특히 저자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주요 공간에서 자라며 '동궐도'에도 그려진 고목나무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동궐도'는 조선 순조 연간에 제작된 대형 궁궐 그림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의 건물뿐만 아니라 4천여 그루의 나무까지 채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저자는 책에서 우리나라 궁궐에서 가장 오래된 고목인 '창덕궁 규장각 향나무(천연기념물)'를 주목한다. 수령 750~760년으로 추정되며 현재 받침대 15개가 괴어져 있다. 가지가 옆으로 낮게 뻗은 탓이다. 정조 및 순조 연간의 학자인 유본예는 규장각 향나무가 당시에도 기둥 12개로 받쳐진 덕에 번성해 자란다고 기록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받침대로 받쳐진 모습은 '동궐도'에도 그대로 묘사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엔 왜 규장각 향나무를 보호했을까? 저자는 '동궐도'에서 규장각 가까이 선원전에도 아름드리 향나무가 2그루 그려진 점에 주목한다. 선원전은 왕실의 제사 공간인데, 향나무는 제향에 쓸 재료가 되어 보호받았고, 덕분에 규장각 향나무가 기나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향나무 목재는 울릉도에서 따로 조달하고, 울릉도산 진품을 받기 위해 특산 황토를 함께 진상하길 요구할 만큼 중요했다.

저자는 나무와 관련된 역사·문화 문헌을 비롯해 '동궐도'와 각종 궁중 기록화를 아우르며 고목의 삶을 복원한다. 그러면서 궁궐과 옛사람들이 나무와 함께한 의미를 되짚는다. 선원전 측백나무(300여 살)에서는 역대 왕의 어진을 모셔둔 공간의 신성한 분위기를 엿본다. 존덕정 은행나무(약 250살)에서는 공자를 기리고 학문을 숭상하는 정신을 되새긴다. 빈청 뒷산(동궁 앞 숲속) 쉬나무 고목에서는 야근과 야간 연회가 이뤄졌을 궁궐의 밤을 되살린다.

시대 변화상에 맞춰 사라지고 복원된 나무 이야기도 담았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나무가 잔뜩 심겼다가 광복 이후 '동궐도'의 모습대로 우리 전통 꽃나무로 단장된 창경궁 옥천교의 이야기 등은 시대와 궁궐의 변천을 더욱 생생히 느껴지게 한다. '궁궐 고목나무 지도'에는 주요 궁궐 고목나무의 위치를 표시해 현장 답사를 돕는다. '동궐도'와 지도 모두 주요 전각명을 친절하게 적고, 공간과 나무를 살필 수 있는 사진이 실려 있어 직접 찾지 않고 궁궐과 고목나무를 먼저 둘러볼 수 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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