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다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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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16  |  수정 2024-07-16 06:55  |  발행일 2024-07-16 제22면
윤 대통령의 이상한 결정

'식자우환'과 전문가의 저주

권력은 뇌를 바꾸는 강한 약물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환상

사회 전체에 큰 불행 가능

[강준만의 易地思之]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와 지시에 의해 임성근 사단장이 혐의자에서 제외된 것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강한 의문이 남는다…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아는 게 병이다'라는 속담이다. 한자어로는 '식자우환'이다. '지식의 저주' '전문가의 저주'도 비슷한 개념이다. 운전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바로 그 자신감 때문에 대형 교통사고를 낼 위험이 크다는 가설이 있다."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이 지난 11일에 쓴 칼럼에서 한 말이다. 반가웠다. 나 역시 이 사건이 크게 불거진 이후 내내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성한용의 가설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다.

'지식의 저주'나 '전문가의 저주'는 어떤 주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아예 모르거나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데에 무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감이나 자만심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자신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과연 검사 시절에도 그랬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시절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살펴볼 일이겠지만, 그 시절과는 질적으로 다른 변화가 윤석열에게 일어난 건 아닐까?

아일랜드 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권력은 매우 강력한 약물이다.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며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 인간을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의 권력도 망각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검사 생활 몇 개월 만에 뇌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뇌만큼 확실하게, 많이 바뀔 순 없을 게다. "괜찮던 사람도 저어기(청와대)만 들어가면 바뀐다"(김종필)는 명언도 있잖은가. 이 변화를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은 윤석열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내다 도중 하차한 언론인 이동훈이 아닌가 싶다.

윤석열의 대통령 생활이 약 5개월이 된 2022년 10월5일 이동훈은 페이스북을 통해 "스스로 공을 자랑하고, 그 자신의 지혜만 믿었지 옛것을 본받지 않았다"는 항우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를 소개한 뒤 "항우가 왜 실패했나? 사마천의 간단명료한 진단이 가슴을 때린다"고 적었다. 그는 윤석열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말한다고 쓴 뒤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깨알 지식을 자랑한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는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낸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윤석열이 그렇게 믿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게 바로 앞서 제기한 의문에 대한 답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싶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 직행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된다며 펄펄 뛴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당 경선 TV토론회에 세 차례나 '왕(王)'자 손바닥으로 참석해 "무속인이 개입했다"는 비판과 조롱을 받았던 사람이, '실언 제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니, 자신도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자신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는 자기최면으로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든 건 아닐까?

전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어떤가? 양상은 다르지만 그 역시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는 식의 확신을 갖고 있을 가능성에선 윤석열과 비슷하다.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시절이던 2018년 11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다.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다." 만독불침은 '어떠한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그게 바로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2022년 1월 1일 석학 도올 김용옥은 이재명을 향해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의 뜻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오느냐고"라고 말했다. 사실 거의 모든 한국인은 '개천에서 난 용'에 대해 경의를 표할 뜻이 충만하다. 하지만 이재명에 대해선 두 입장이 있다. 이재명이 이룬 결과만으로 진보성을 부여하는 입장과 과정·수단·방법의 정당성을 중하게 여기는 입장이다. 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이재명의 삶을 관통하는 불편한 진실에 주목한다.

이재명은 스스로 자신을 '하늘이 낸 사람'으로 믿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너무도 무모하고 위험한 길을 걸어왔다. 그는 전과 4범에 총 7개 사건의 11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자신과 관련된 사건 때문에 5명이 자살을 했지만 무조건 '검찰 탓'으로만 돌리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고 외칠 정도로 적반하장에 능하다.

그가 이름 없는 기초단체장에서 수개월 만에 전국적 지명도를 얻어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 비결은 대중의 피를 끓게 만드는 증오·혐오의 선동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박근혜의 무덤을 파,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주자" 등과 같은 극단적 언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팬덤정치를 기반으로 한 민주당의 사당화(私黨化)가 한국 정당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건만, 윤석열은 온갖 실정으로 그런 퇴행을 돕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제발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 덕담으로도 하지 말자. 지도자가 그 말을 믿는 순간 눈에 뵈는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론 그리고 사적으론 자기최면의 힘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은 할 수 있을망정 장기적으론 그리고 공적으론 사회 전체에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그 누구에게건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은 정말 위험하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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