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현 내집에서의원 원장은 방문진료를 필요로 하는 이동약자이자 환자인 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놀랐다면서 이들의 입장에서 이들을 위한 의료서비스 제공은 사회적 책임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
# 절실하지만 선뜻 참여하기 힘든 방문진료…그 길을 걷고 싶었다
내집에서의원에 달린 작은 간판 |
내집에서의원은 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내원환자를 받지 않고 오로지 방문진료만 하기 때문에 차트 정리와 의료기기 보관 정도의 기능이 전부다. 매우 작고 귀여운 형태의 간판이 달려있지 않았다면 10평 남짓한 이 공간을 병원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정도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베이스캠프 같은 이곳에서 구 원장은 매일 아침 왕진가방을 들고 그를 기다리는 환자이자 이동약자들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동거리도 만만찮아, 포항은 물론, 영덕이나 영천 금호까지 다니며 하루 평균 5~10명을 진료한다. 취지에 공감하고 뜻을 같이 하는 김보람 간호사와 시종화 부원장 겸 사회복지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3개월 차 소감이다.
'코로나 전담' 종합병원장으로
오지·거동불편 환자들 퇴원후
참고 견디는 '진료 포기'를 보며
'누군가 할 일, 내가 해보자' 결심
"치료든, 삶 마감이든 집서 원해"
병원 꺼리는 병상의 父영향도 커
병원장 퇴직 두 달 만인 올 5월
'내집에서의원' 열며 왕진 첫발
포항서 영덕과 영천 금호까지
하루 5~10명 진료 강행군에도
방문진료 수요에 못미치는 공급
'마을주치의' 도입 필요성 절감
# 예상도, 상상도 뛰어넘는 현실…병상에 계신 父 영향이 컸다
구 원장은 병원장으로 재직 당시 코로나 사태를 겪었다. 코로나 전담병원이었기에 입·퇴원과 치료과정 등을 최일선에서 지켜봤다. 같은 환자라도 형편에 따라 퇴원 이후의 삶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다. 그때 경험이 방문진료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잉태했고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교통 오지에 거주하는 홀몸어르신이나 어르신 부부들은 병원 한 번 가는 게 무척 고된 일이다. 거동이 불편하면 고통의 크기는 커지기 마련이다. 집에서 참거나 견디며 진료를 포기하는 악순환 사례가 거듭될수록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 팔순의 아버지였다. 병원가기를 극도로 싫어했고 치료를 받든, 생을 마감하든 집에서 하고 싶다는 바람을 틈만나면 아들에게 종용하다시피 했다는 것이 구 원장의 전언이다. 의료기기 도움없이는 안될 중증이어서 결국 병원에 모셨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케어를 받고싶다는 소망과 의지는 그의 결심을 앞당기게 만들었다. 병원장 퇴직 2달 만에 나선 첫 방문진료에서 그는 80대 당뇨환자를 만났다. 수치가 400을 넘을 정도로 심했으나 '절대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환자 수백명을 접하면서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고 운영의 묘를 깨우치고 있다. 직원 월급과 운영비 등 경제적으로는 아직 지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생각했던 것 만큼의 보람과 자기만족을 스스로 찾으려는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 이동약자 케어는 사회적 책임…'마을주치의' 도입 실효성 확신
구 원장의 명함 뒷면에는 찾아가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안내가 간략히 소개돼 있다.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다, 의료진이 집으로 찾아와 진료를 한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하고 있어서다. 그는 방문진료가 처음인 경우, 환자가 복용 중인 약을 반드시 확인한다. 이곳 저곳 아플 때 처방받았던 약을 한번에 적게는 4~5개, 많게는 10개 이상을 복용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 및 처방에 따른 약을 적정하게 복용해야 바람직하다. 약에 대한 맹신이 과하거나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이런 상황이 흔하게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불필요한 약을 줄이는 것 역시 치료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요즘처럼 푹푹 찌는 날씨에는 환자도, 의료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쾌적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진료환경 때문이다. 통상 문진을 하고 혈압을 체크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면 환자당 진료시간은 20~30분을 훌쩍 넘긴다. 방문진료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방안으로 구 원장이 떠올리고 있는 것은 '마을주치의' 개념이다. 10개 정도의 마을을 묶어 주치의 개념을 도입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의사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프라 활용이나 예산 등을 포함한 행정과의 소통이 절대 필요한 부분이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고, 일선 시·군의 인구절벽이 당장의 현안이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방문진료가 핵심인 '마을주치의'가 도입돼 활성화되면 환자들의 이동에 따른 시간적·경제적·심리적 부담이 대폭 완화될 뿐 아니라, 신뢰감이 형성되면서 치료의 질이 높아진다.
대구 능인고와 계명대 의대를 졸업(1994년)한 구 원장은 1994~1999년 포항 선린병원에서 수련의와 외과전공의 과정을 밟으며 포항과 인연을 맺었다. "3개월 정도 방문진료를 다녀보니 의료진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동약자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관련 법이나 규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애매해서 적극적인 진료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제법 있었습니다. 제 역할은 의료기관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주는데 있다고 봅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더 많은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에 못미칠 때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언제, 어떤 이유로 그만 둘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장준영 논설위원 changcy@yeongnam.com
장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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