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오른쪽은 황톳길이다. 왼쪽으로는 150m의 자갈길과 모랫길이 조성되어 있다. 청량한 칠엽수 그늘 속을 방문객들이 걷고 있다. |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켜 본다. 대구수목원은 몇 번이나 가 보았지만 수목원지하차도와 테크노폴리스로가 생긴 뒤부터 약간 긴장하게 된다. 수목원으로 가는 차가 7대라는 정보가 뜬다. 평일 오전이니 도로도 수목원도 조금은 한산하지 않을까. 뒷북 같지만 수목원이 3배나 커졌다고 한다. 숲길도 여럿 생겼다고 한다. 지역의 변화에 무정했음이다. 탈 없이 수목원에 도착한다. 초입에 조금 작은 제2주차장이 있고 아래쪽에 아주 큰 제3주차장도 생겼다. 자연스럽게 제1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주차장에 그늘을 드리우며 찰랑거리는 플라타너스 잎 사이로 똥그란 열매들이 뭉클하다. 그 많던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시원 말랑한 430m 황톳길 맨발 걷기
자갈·모랫길도 조성, 취향따라 산책
포석정·조선 연못 등 꾸민 한국정원
외곽 크게 도는 3.96㎞ '수목원 숲길'
나뭇잎 그림 전시된 '계수나무 쉼터'
숲 함께 만든 시민 이름 바위에 새겨
◆ 맨발 황톳길이 있는 동편 산책로
관리사무실 즈음에서 산책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430m의 맨발 황톳길이 시작된다. |
수목원으로 오르는 인공폭포 옆 계단 앞에서 좌우를 본다. 저기 서편으로 가는 사람은 데크로드에 오를 것이다. 저기 동편으로 가는 사람은 산책로의 맨발 황톳길로 향하는 것일 게다. 그들의 주저 없는 걸음은 수목원을 자주 찾는 사람들의 일상성을 느끼게 한다. 인근에 사는 친구는 이곳을 무시로 드나들며 늘 '우리정원' 또는 '내 정원'이라 으스댄다. 익숙하게, 습관처럼 계단을 올라 활엽수원을 지나 습지원으로 향한다. 쨍한 햇살 속에 펼쳐진 잔디정원과 한 그루 무성한 플라타너스를 스치며 생각한다. 그래, 우리정원이지.
목재문화체험장 옆을 통과해 산책로에 든다. 저 아래에서부터 맨발의 사람들이 걸어온다. 산책로 초입에 발 씻는 수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수돗가 주변에 가지런히 앉아 기다리고 있을 신발들을 떠올린다. 약용식물원으로 가는 데크 길이 숲속으로 나 있다. 2019년에 조성된 곳으로 약용식물 203종 9만3천400여 본이 식재되어 있단다. 약용식물 연구 목적이 큰 듯하다. 느슨하게 출입 금지되어 있는 비닐하우스를 지나다 돌아본다. 두어 걸음 침범해 '식물 종 보존센터 희귀 특산식물 증식 온실'이라는 푯말을 본다. 대구수목원은 환경부 지정 생물다양성 관리기관이고 산림청 지정 산림유전자원 관리기관이다. 우리정원이 하는 일이 많다.
관리사무실 즈음에서 산책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430m의 맨발 황톳길이 시작된다. 황톳길 초입에 수목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일하고 있다. 황톳길은 관리가 어렵다. 촉촉하지 않으면 황토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물을 뿌려 관리해야 한다. 비가 와도 문제다. 빗물에 황토가 유실되거나 배수구를 막기도 한다. 세심히 살펴야 하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수고로운 황톳길은 숙성된 반죽처럼 촉촉하고 시원하고 말랑말랑하다. 150m의 자갈길과 모랫길도 있고 황톳길 끝에는 수도시설과 신발장이 있다. 수돗가 근처 바위 위에서 신발과 양산 등이 주인을 기다린다. 양치식물원을 지나며 수목원의 환한 중앙 축선 길로 나선다. 980m의 동편 산책로는 여기서 끝이다. 동그란 언덕 위에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예쁘게도 서 있다. 서양양버즘나무가 원래 이름이지만 늘 플라타너스라고 부르게 된다. 이게 다 김현승의 시 때문이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3문에서 2문으로 수목원 숲길 따라
한국정원의 방지원도. 곳곳에서 수목원을 가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암키와와 수키와로 장식한 토담에 눈길이 간다. 보물인 달성 도동서원의 담장과 닮았다. |
플라타너스 동산 뒤로 토담에 둘러싸인 한국정원이 펼쳐진다. 경주 포석정을 재현한 곡수거, 조선시대 대표적인 연못인 방지원도, 단을 쌓고 화초를 심은 화계, 중국의 무산 12봉을 형상화한 가산 등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암키와와 수키와로 장식한 토담에 눈길이 간다. 보물인 달성 도동서원의 담장과 닮았다. 무산 12봉을 지나 3문을 나선다. 대구수목원에는 8개의 문이 있는데 3문은 가장 북쪽 끝에 있는 문이다. '수목원 숲길'이라는 길이 있다. 전체 3.96㎞로 수목원 외곽을 크게 도는 산길이다. 이 길은 천수봉, 삼필봉, 문씨세거지, 마비정 벽화마을 등과 이어져 아주 큰 네트워크를 이룬다. 3문에서 2문까지는 '수목원 숲길 가운데 유일하게 수목원 울타리와 나란하다. 0.33㎞의 짧고 단순한 길이다.
울타리 너머 보이는 수목원의 지반이 숲길보다 높다. 수목원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1996년부터 지하철 건설을 비롯한 각종 건설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흙을 모아 6~7m 두께로 덮었다. 그렇게 복토한 곳에 나무를 심은 것이 오늘의 대구수목원이다. 조금 더 거슬러 가면 시작은 1973년 양묘장이다. 2002년에 개원까지 준비기간이 29년, 개원 후 오늘까지가 22년,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상당한 우여곡절을 예상할 수 있다. 방촌과 신천, 성서에 수목원양묘장이 있다. 각 양묘장에서 키운 묘목은 분기별로 8개 구군 및 관내 기관에 나누어져 우리가 도심에서 보는 꽃과 나무가 된다. 매년 식목일 즈음 수목원에서 나누어주는 묘목도 수목원양묘장에서 태어나 자란 것들이다. 문씨세거지로 가는 길이 분기한다. 격한 반대와 부정적인 시선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이가 문희갑 전 시장이었고 한다.
◆수목원 서편의 데크로드
'수목원 숲길'은 수목원 외곽을 크게 도는 산길로 천수봉, 문씨세거지 등으로 이어진다. 3문에서 2문까지는 수목원 울타리와 나란하고 문씨세거지로 가는 길이 분기한다. |
2문 앞에 우산들이 알록달록하다. 가지, 상추, 양파 등을 내놓은 여인들의 난전이 펼쳐져 있다. 수목원에서 검은 봉지를 달랑거리며 걷는 사람을 본다면 모두 여기서 쇼핑했다고 보면 된다. 가지와 상추를 사들고 수목원 안으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수목원 서편 데크로드가 입구 초소까지 이어진다. '계수나무 쉼터'에 내려선다. 나뭇잎을 이용한 콜라주 그림들이 걸려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종이와 풀, 가위 등이 담긴 바구니도 있다. 나뭇잎 마냥 살랑 흔들리는 작품들을 보며 계수나무 쉼터에 오래 머문다. 나무는, 숲은, 노래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이렌이다.
수목원 카페 앞에서 저 아래까지 나아가는 도로가 시작된다. 왼편에는 멀리 산림문화전시관이 자리한다. 잠시 주저하는 사이 길 가에 놓인 커다란 바위를 발견한다. '수목원 조성에 도움을 주신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선인장 200종 정주진님, 작품분재 250점 김경자 님, 어린분재 500점 임충길님, 수석 300점 문기열님, 석탑4점 수목 5그루 이태숙님, 이팝나무 등 26그루 달성군 교육청, 벚나무 145그루 채석규님, 개잎갈나무 200그루 우병근님, 목련 15그루 박찬님. 한 분도 빼놓지 않고 다 불러본다. 수목원에는 대구 시민 개인이 심은 나무도 많다고 한다. 데크로드를 보내고 수목원안쪽으로 들어선다. 시목원에서 화목원으로, 잔디 광장의 플라타너스와 다시 한번 눈 맞춤한 뒤 야생초 화원과 침엽수원을 지나 계단을 내려간다. 수목원 조성 당시 녹지과장이었던 분이 대구수목원을 '시와 시민이 함께 만든 대구정신의 결정체'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꾸 감동하고 북받치고 그러면 나이든 것이라던데, 이런.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상인동방향 앞산순환도로 끝까지 간 뒤 우회전해 상화로를 타고 약 3㎞ 직진하다 대구수목원, 대구지방합동청사 이정표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주차와 입장은 무료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대구 1호선 대곡역에 내리면 된다. 도보 25분 거리다. 산책로, 숲길, 데크길을 천천히 두리번거리고 머뭇대고 쇼핑하고 쉬며 걷는 데에 2시간 정도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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