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용 범어우방1차 재건축정비사업조합장은 지금까지 33년간 공무원 생활하면서 쌓았던 지식과 노하우를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펼쳐봤다. 조합원들과 일반 분양자들이 진정성과 열정으로 집을 지어줘 고맙다고 인사해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그것이 곧 보상이라고 말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
이렇게 조합을 운용하는 중심에는 박선용 조합장이 있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과의 공사비 갈등 소식을 접하면서 박 조합장을 알게 됐다. 학자 스타일 같다고 느꼈다. 후에 알고 보니 2014년 말 경북도교육청 감사국장으로 퇴임한 전직 공무원(공직생활 33년)이라고 했다.
공사비 갈등으로 인한 조정을 두 차례 참관했던 필자는 그의 발언, 제공 자료 등을 보고 '까다롭다'는 소문이 날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기심도 일었다. 어떤 사람이기에 조합을 정비업체 없이 이끌어 왔을까. 지역의 많은 조합에서 여전히 조합 운용과 관련한 제보와 고발이 끊이지 않는 상황인데, 앞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거나 진행 중인 조합에 그의 노하우를 알려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행히 박 조합장은 기꺼이 인터뷰에 동의했다. 그는 인터뷰 동안 "저보다 아파트에 초점을 맞춰주면 좋겠다"고 연거푸 말했고 "인터뷰한다고 애쓰는데 소재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됐다. 드라마틱하다고 인상적이고, 뻔하다고 감동적이지 않은 것은 아님을. 거창한 성공보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누구나 다 알 법한 원칙과 해법을 실천에 꼬박꼬박 옮기는 것, 그리고 그 실천을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 그 어떤 비법보다 강력하고 마법 같은 무기임을.
'정비업체 공식' 깬 과감한 도전
"공직후배 사무장·CM체제로 비용 절약
후분양·공사비 갈등 등 고비 많았지만
그때마다 제도·사람 도움 얻어 해결돼
시행·관리처분 한해 동시 인가도 기적"
▶낯선 일이었을 텐데 조합장을 맡게 된 계기는.
"퇴직 후 2019년, 경북대에서 교육학 강의를 할 때였다. 당시 조합장이 있었는데 조합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아파트가 시끄러웠다. 그 때 회의를 한다기에 가봤더니 조합장이 잘못한 건 많은데 그걸 엮을 사람이 없었다. 제가 그걸 정리를 해서 그 해 8월에 해임총회를 해 조합장을 내보냈다. 그러고 나니 조합에 일할 사람이 없다며 총무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재건축이 중지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두고 볼 수 없어 밤낮도 없이, 휴일도 없이 일했다. 범어우방 2차 사무장을 비롯한 지역 조합의 사무장에게 묻고 물었다. 우리보다 약간 앞서 사업이 진행되는 서울의 조합장들에게도 자문을 구했고 운좋게도 경북 출신 분들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4개월 후인 그 해(2019년) 12월 조합장으로 추대됐는데 온 가족이 반대했다. 하지만 건방진 말일지 몰라도 내가 나서야 일이 진척될 것 같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도 작용했다."
▶어떻게 정비업체 없이 조합을 이끌게 됐나.
"공직에 있으면서 행정, 법무, 회계, 감사, 재산업무 등을 두루 해 봤다. 도교육청에서 손발을 맞춰 일했던 후배가 있는데 업무로는 베테랑이라 둘이 같이 하면 행정 일은 못할 게 있겠나 싶었다. 그 후배에게 삼고초려 끝에 사무장을 맡겼고 정비업체 없이 뛰어들었다. 조합원들은 정비업체 비용이 절약되니 좋아했다. 재건축 조합 업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다 보니 초반에는 무시도 많이 당했다. 이 때 재건축 사업을 더 늦게 시작한 범어우방 2차가 오히려 사업 진행 속도가 더 빠르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조합원들이 불안해했다. 후배(사무장)와 같이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일에 전력해 그 다음 해인 2020년 사업시행 인가(7월)와 관리처분 인가(12월)를 동시에 받았다. 관리처분계획 세우는 건 재건축에서 제일 어렵고 심지어 정비업체도 힘들어 하는 업무다. 그런데 기적처럼 한 해에 두 개를 동시에 받아서 기간을 확 단축시켰다."
▶조합장 6년차인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착공만 하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정비사업에 있어 조합 측은 초보자에 가깝고 적은 비용으로 좋은 품질의 아파트를 받고 싶어하는 반면, 시공사는 베테랑인 데다 수익성이 중요하다. 그 관계가 쉽지 않았다. 또 일이 힘들다기보다 불신과 오해가 힘겨웠다. 한 예로 당초 아파트 설계에서 지하주차장이 2층까지였고 세대당 주차대수가 1.48대였다. 지하 3층까지 확장해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비용이 100억원 이상 드니까 대의원들의 반대가 심했다. 노골적으로 심한 말까지도 나왔다. 결국은 설득해 지하 3층으로 설계변경해 주차대수를 보다 넉넉한 1.76대로 확보했다."
▶돌이켜 봤을 때 잘한 일은 뭐라고 보나.
"사무장과 CM(건설사업관리) 인력을 둔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행정은 사무장과 제가 맡아, 정비업체 용역비를 절약했다. 대신 건설 실무는 잘 몰라 CM을 둬 튼튼하고 정성을 다한 집을 짓고자 했다. 그리고 조경에 20억원을 투입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 큰 금액을 들인 것이다. 석가산·연못 등으로 꾸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숲 정원으로 밀어붙였는데 잘한 선택 같다."
조기완판 비결은 입지와 품질
"서울·제주 뛰어다니며 자재·조경 선정
밴드 등 통해 일반 분양자들과도 소통
조합장은 자기 철학과 고집도 있어야
숲정원·주차장 밀어붙인게 잘한 선택"
▶조합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조권 소송, 공사비 갈등 등 밤잠도 못 자도록 어려운 고비들도 있었고 중도금 대출, 후분양 전환 등 위기도 많았지만 그때 그때 신기하게도 제도나 사람의 도움으로 일이 해결됐다. 천우신조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조합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소통을 잘 해야 한다. 밴드에 거의 매일 글을 올려 의견을 수렴하거나 정보를 공유했고, 어려운 점이 있을 때 도움을 청했다. 둘째는 욕심을 안 부리면 된다. 이권이 관련되는 사업이다 보니 사실 그렇게 접근해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호하게 했다."
▶조합장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조건은.
"적은 조합이지만 총예산이 약 2천억원이었다. 이걸 집행하려니 힘들 때가 있다. 조합장은 각자 조합의 특성에 맞게 건축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자기 철학과 고집도 있어야 한다. 조합장은 합리적인 사고와 과정도 중요하지만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때로는 양보도 하면서 강심장으로, 전략적으로 준공을 위해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덧붙여 시공사를 선정할 때 공사비만으로 뽑으면 안 된다. 최초 계약 단가는 수치일 뿐이다."
▶범어아이파크 1차가 분양 성공한 이유는.
"우선 입지가 훌륭하다. 그 다음은 품질이다. 자재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서울 유명 아파트와 전시장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주방·바닥재 등의 자재를 꼼꼼히 골랐다. 외부 조경도 제주도로 직접 가서 팽나무·은목서 등을 공수해 왔고 키 큰 적송은 강원도에서 골라왔다. 밴드·카페·블로그를 통해 조합원 및 일반 분양자들과 소통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남겨진 과제는.
"지난 입주자 사전 점검 때 입주자들이 지적한 하자를 완벽하게 수리해 입주민들이 기분 좋게 입주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두 번째는 오피스텔과 상가 미분양이다. 수성구청 이전 등 호재가 있어 당장은 분양이 안되더라도 분양가를 낮추지 말고 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부담해 추후에 청산하자고 제안했다. 오피스텔 2개실은 단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박주희 기자
이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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