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혼자 사는 모습도 어엿한 하나의 ‘가족 형태’가 아닐까요? ”

  •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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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7 16:31  |  발행일 2025-05-27
5월 가정의 달 특별기획 ‘넓어지는 가족 스펙트럼’ <중> 1인 가구 이상미씨 스토리
지난 23일 만난 이상미(36·여·달서구)씨.  이씨는 2023년 익숙했던 가족 품을 벗어나 '홀로살이'를 선택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지난 23일 만난 이상미(36·여·달서구)씨. 이씨는 2023년 익숙했던 가족 품을 벗어나 '홀로살이'를 선택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이제는 혼자 사는 모습도 어엿한 하나의 '가족 형태'가 아닐까요?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가고, 주민등록등본에도 '세대주'라고 나오니까요."


올해 9년차 공무원인 이상미(여·36·대구 달서구)씨는 2023년 독립을 결심했다. 오랜 시간 익숙했던 가족 품을 벗어나 '홀로로서기'를 선택한 것. 결혼이나 이직 등과 같은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오롯이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물론, 장시간 소요되는 출퇴근 시간도 문제였다.


"그동안 저는 가족 안에서 보호받는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나 자신을 지켜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살아보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내 생활 바이오 리듬에 맞춰 살아보면 어떨까. 너무 궁금했죠."


달서구 본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잡은 상미씨는 이곳을 스스로 꾸미고 청소한다. 매 끼니도 준비한다. 퇴근 후 소파에 기대 조용히 책을 읽거나,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치열했던 하루를 마감하는 루틴이다. 매일매일 혼자 지내지만, 소소한 일상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탓에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아무래도 혼자 살다 보니 일부터 취미까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아요. 경제적 독립이 뒷받침되니 혼자 살고 있음에도 부족함은 줄어들었고, 삶의 질은 높아졌어요. 진정한 의미의 '세대주'가 된 느낌입니다."


상미씨가 처음부터 '홀로서기'에 익숙했던 건 아니다. 독립 첫해,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한 번 부정적인 생각에 얽매이면 이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랐다. 간혹 밀려오는 외로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땐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막막함도 있었다. 이에 상미씨가 선택한 건 '야구'였다. 대구가 연고지인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의 팬이 된 이후부터, 머릿속 온갖 '잡 생각'이 사라졌다.


"혼자 살면 모든 걸 내가 정해야 하잖아요. 그만큼 자유롭고 주도적인 삶이 가능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어요. 집에 홀로 있을 때 느껴지는 고요함이 잘 적응되지 않았고, 파김치가 돼 퇴근할때면 심신이 더 힘들었어요. 누군가가 있다면 화제를 돌릴 수 있겠지만, 조용한 공간에 혼자 있으니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되기 쉬웠거든요. 사실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가 큽니다. 집에 있으면 의식적으로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틀어놓게 되더라고요."


상미씨는 '결혼'에 대해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눈치였다. 또래 지인들이 하나둘 기혼자가 됐지만, 아직 결혼이 행복하다는 판단이 서지 않아서다. 특히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을 지금처럼 병행할 수 있을까?' 라는 자신과의 물음 앞에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주면에 슬슬 결혼한 친구들이 더 많은 나이가 됐지만, 아직 '결혼생활이 행복할까?'라는 질문엔 제대로 답하지 못하겠어요. 사실, 구청에서 주최한 '커플 매칭' 행사에도 나가 봤어요. 근데 이게 과연 나에게 맞은 '옷'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가정이 생기면 내 모든 시간을 가족들에게 할애해야 하는 게 맞다는 데는 동의해요. 그런데 전 아직 준비가 안됐거든요. 제 행복을 위해 가족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잖아요."


다만, 주변에서 1인 가구를 '일시적 상태' 혹은 '결핍된 삶'으로 바라보는 곱지않은 시선은 상미씨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현재 홀로살이에 만족하고 있지만 '1인 가구'가 가족 단위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서다.


"주택을 구하거나 대출을 받을 때도 청년이 아니라면 1인 가구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에 반해 결혼 가정은 우대금리부터, 분양 우선권까지 정책적으로 여러 혜택이 보장돼 있어요. '혼인율'과 '출생률' 저하의 원인으로 미혼 남녀들을 지목하는 분위기 속에서 혹시 '혼자 살아가는 게 죄인가?' 느껴질 때가 많아요."


상미씨는 1인 가구가 더이상 소수의 '가족 형태'가 아니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부부와 자녀'라는 틀에 고정돼 있지만, 시대가 바뀌며 그 공식도 '옛말'이 됐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12월말 기준 대구지역 내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34.7%(35만9천여가구)를 차지할 정도다. '1인 가구'는 이제 일반적인 삶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서 '그래도 언젠가는 결혼하겠지' 혹은 '혼자 있으니 외롭지 않냐'고 자주 물어요. 그런데 전 지금도 충분히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워요. 누군가의 아내나 딸이 아니어도 '이상미'라는 나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을 통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마음껏 즐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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