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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논설실장 |
“야! 이번 대선, 이재명이가 이길 수밖에 없겠다. 도저히 안된다”. 그걸 이제 알았느냐고 내가 반문했다. 계엄령으로 호작질하고 파면당했는데 정권교체를 무슨 재주로 막느냐는 그동안 늘상 해오던 말로 되받았다. “그게 아니라 주식시장 때문이다. 댓글 창 보니 난리가 났다. 너, 상법 개정 아나? 모르지?”라고 덧붙였다.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유튜브를 뒤적여 이재명 후보 연설을 집중 들어봤다.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 유세장. 서초구는 서울 강남 3구(區)의 하나로 더불어민주당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우파 강세 지역구다. 이 후보가 목소리를 높인다. “제가 당선되면 주식시장 오릅니다. 벌써 오르고 있어요. 저도 벌써 ETF(상장지수펀드) 1억 투자했습니다. 좀 남을 것 같아요”.
그의 논리는 이어진다. “자본주의 핵심은 주식시장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공정하지 않다. 대주주가 마음대로 죽였다 살렸다 한다. 암소가 내 것이면 낳은 송아지도 내 것이어야 하는데,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송아지가 대주주 것이 된다”고 일갈했다. 흔히 말하는 '쪼개기 상장'을 의미하는 듯 했다. 이 후보는 “주가조작 같은 불공정거래,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키면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한국 주식시장의 목마른 지점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사실 우리 주식시장은 대그룹, 대주주가 좌지우지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잘 나가는 주식, 예를 들면 LG화학도 투자확대 차원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으로 쪼갰다. 이 정도는 약과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재벌, 예를 들면 삼성, LG, SK, 한화 그룹의 종목은 통합돼 있지 않다. 계열사가 수십개씩 상장돼 있다. 형제, 아들 딸, 배우자가 나눠 갖기도 한다. 미국은 애플이면 애플, 엔비디아면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면 마이크로소프트 하나이지 같은 이름의 온갖 계열사들을 상장시키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공약인 '상법 개정'은 주식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이다. 상장회사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일반 주주에게로 확대했다. 이사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회사 자체의 이익뿐만 아니라, 전체 주주를 생각해야 한다는 입법안이다. 개미 투자자, 소액투자자의 권리도 고려하란 취지다. 여기다 감사 선임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조항도 강화했다. 대주주 마음대로 감사를 선임할 수 없게 했다.
국내 주식 투자자는 1천400만명으로 추산된다. 미성년자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다. 돈을 벌게 해준다는 공약에 마다할 유권자가 있을까? 주식시장이 모처럼 강세장이다. 이재명 당선후 110포인트 급등했다.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지만, 이 대통령은 정권교체의 목적을 달성했고, 소액 주주들의 주머니를 조금씩 불리고 있다. 대한민국 주식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치고 우상향 그래프로 달려 행여 5천포인트가 달성된다면 이재명 정권은 날개를 달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 경제를 공언했다. 이제는 상투적인 문구가 된 '문제는 경제야'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선거구호가 떠오른다. 그는 르윈스키 추문에 휩싸여 탄핵 위기에 내몰렸지만, 미국 경제를 급신장 시킨 덕에 없던 일이 됐다. 세상은 어딘지 모르게 비교적 비슷하게 돌아가는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박재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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