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도서출판 학이사의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금요북토크 행사. <학이사 SNS>

도서출판 한티재에서 펴닌 인문사회 서적들. <한티재 SNS>
기관이나 단체명 앞에 '지역'이란 접두사가 붙으면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의 애정일까. 그 중요성과 가치가 매우 깊게 다가온다. 상업성이 크지 않은 일이면 더욱 그렇다. 일과 지역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역출판'이 대표적이다.
다들 출판을 사양산업으로 여긴다. 정부도, 거대 자본도 '돈이 안 되는' 분야로 치부한다. 지역 출판사는 조금 다른 얘기다. 상업성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지역이라는 이름이 붙은 순간부터 그곳은 단순한 사업장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출판은 사라지는 지역의 콘텐츠를 활자로 기록함으로써 후손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이 소멸하는 시대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며 지역의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간다.
"지역에 좋은 출판사가 하나 있는 것은 좋은 대학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지역출판 시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다. 무엇이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어떤 업종보다 변화에 민감하다. 이런 세상에도 우리 지역에 오래된 출판사가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71년 역사를 가진 대구의 1호 출판사 '학이사(學而思)'와 2010년 문을 열어 활발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티재'다. 풀뿌리처럼 대구에서 자생하며 지역문화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문화예술 예산 확대를 약속했다. 대구는 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출판계에도 그 바람이 스며들 수 있을까. 소중한 지역출판 시장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전환점에서 학이사와 한티재, 두 출판사 대표를 만나 지역출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 대표가 학이사 서재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학이사 제공>
▶대구에서 오랜 시간 출판사를 운영해 왔다. 운영 중인 출판사의 비전과 정체성을 소개해달라.
신중현 학이사 대표(이하 신): "도서출판 학이사는 71년 역사를 가진 지역 출판사로,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다. 1954년 설립된 '이상사(理想社)'의 전신이다. 2005년 '학이사(學而思)'로 회사명을 바꾸고 2년 뒤 창업주로부터 출판사를 이어받았다. '대구에 산다, 대구를 읽다'라는 말을 출판정신으로 삼는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데 자긍심을 느낀다. 독서 동아리, 북토크 등을 통해 독자와의 만남도 꾸준히 이어가며 '책으로 즐겁게 어울려 놀기'를 꿈꾼다."
오은지 한티재 대표(이하 오): "도서출판 한티재는 2010년 대구에서 문을 연 출판사다. 대표와 편집장 두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다. 한티재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한티재 하늘'이라는 소설에서 따온 이름이다. 권정생 선생은 사람과 자연과 아이들을 사랑했던 훌륭한 작가였다. 한티재는 그런 정신을 따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오늘 세대와 내일 세대가 공존하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출판사 대다수가 서울과 경기 파주에 몰려 있다. 대구에서 출판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신: "책과 신문, 활자 읽기를 워낙 좋아했다. 1987년 6월29일 이상사(학이사의 전신)에 첫 출근을 하며 출판업에 발을 디뎠다. 창업주는 한국전쟁으로 피란을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대구에 뿌리를 내렸다. 저도 이를 따르고자 했고 오직 학이사에서 38년째 일하고 있다."
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계속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해 왔다. 그 후 남편의 고향인 대구로 함께 내려왔다. 출판일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당시 지역에 출판사가 많지 않아 대구에서 직접 출판사를 차리게 됐다.
▶예전부터 대구는 우리나라 지역출판의 중심지였다. 대구를 기반으로 출판업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신: "대구는 유난히 작가군이 풍부한 도시다. 한국전쟁 당시 전국 각지의 예술가들이 피란오면서 출판은 물론 문화예술이 크게 성장했다.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대구에는 좋은 작가들이 많고, 지역만의 콘텐츠가 풍부하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분야가 없다. 다른 지역에서 작가를 찾을 필요가 없다. 대구에서 출판하는 게 행복하다."
오: "대구는 흔히 보수적인 곳이라고 인식된다. 한티재는 그 속에서도 다양한 시선을 전하려 한다. 보수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곳에서 조금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책을 낸다. 초창기 때부터 '대구에도 이런 출판사가 있어서 반갑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책을 귀하게 여겨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독서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출판사를 운영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신: "그나마 대구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에서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있는데, 책 읽는 인구가 감소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활자가 지닌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자책, 오디오북 등 다양한 형태의 책이 나오고 있고 학이사에서도 내고 있다. 하지만 종이로 텍스트를 읽었을 때의 압도감은 따라오지 못한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경향도 있지 않나. 옛날만큼 장사가 안 될 뿐이지 출판은 계속될 거라 본다."
오: "어느 지역에 있든 출판사 운영은 힘들어지고 있다. 지역 출판사라고 더 그런 것이라 할 수도 없는 듯하다. 출판사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도 독자는 지역에 한정되지 않으니 출판사로서는 더 폭넓은 고민이 필요하다. 출판계에서도 종이책을 읽는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고,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등 다양한 형식의 책을 병행해서 내고 있으며 한티재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어떤 생존 전략을 구상·추진하고 있나.
신: "예전에는 종이책만 만들면 됐다. 온라인이 없던 시절엔 초판만 몇 천부씩 찍었다. 이제는 세월이 바뀌어서 전자책, 오디오북, 큰 글자책까지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신문기사를 보니 대구의 초등생 수가 2029년이면 8만명대까지 감소한단다. 참 힘든 현실이지만 출판을 계속하려면 해외까지 눈을 돌려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한국 책을 일본에 알리는 일본 '케이북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올해도 갈 예정이다."
오: "한티재는 기후위기 등 환경·생태 분야의 책,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인권 문제를 다룬 책과 같은 인문사회 분야의 도서를 꾸준히 출간해 왔다. 그동안 한티재가 좋은 책을 낸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구경북 지역의 훌륭한 저자들, 그리고 지역을 넘어 전국의 다양한 저자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좋은 저자들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 그러면서 독자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만들기 위해 한권, 한권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것이 한티재가, 또 편집자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출판 시장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정책적 지원은.
신: "출판사도 자생력을 키워야겠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출판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 출판사는 단순히 책을 만드는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역할을 한다. 도서관이나 학교 같은 공공기관에서 일정 비율로 지역 출판사의 책을 구매하도록 '쿼터제'를 도입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 '윈윈'할 수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좋은 책이 많이 나온다는 걸 알릴 수 있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다."
오: "지역 도서관에서 지역에서 출판된 책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도서 구매뿐만 아니라 저자 강연 등 도서관 행사 시 지역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도 고려하면 좋겠다. 도서관 행사 홍보를 보면 대형 출판사의 유명 저자에 편중된 경우가 많다. 지역 출판사에서 책 관련 행사를 하려고 하면 적당한 공간을 찾기가 어렵다. 공간 규모도 충분하지 않고 대관 비용도 부담스럽다. 관공서의 행사장은 저녁 시간 사용이 어려운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그 외 정책적 지원에 대해서는 실제로 행정이 이뤄지면 좋겠다. '대구시 지역출판 진흥 조례'를 바탕으로 지역 출판사들과 협의한 행정이다. 지금은 조례만 있는 듯한 느낌이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지역출판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지역출판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신: "지역 출판사들이 단순히 서울의 큰 출판사를 따라잡겠다는 각오로 살아 남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출판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 늘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책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지역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다. 그 마음만 있으면 절대 이 일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대구 정도의 도시면 충분히 지역 출판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오: "지역에서 열심히 출판을 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꽤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들이지만 좋은 책을 내려고 다들 노력하고 있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오디오북이든 한 권이라도 책을 더 가까이 해주는 독자들이 늘어난다면, 지역출판 진흥 조례 등 이미 만들어놓은 조례들을 기반으로 정책적 지원이 더 구체화된다면, 지역 출판사들에게 소중한 응원이 될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도 좋은 출판사들이 있구나' '좋은 책이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나오는구나' 하는 뿌듯함이 있는 그런 도시가 살 만한 도시가 아닐까."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