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깨지기 쉬운 일상의 평온

  •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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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16 06:00  |  발행일 2025-06-15
박순진 대구대 총장

박순진 대구대 총장

주말 카페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한때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유행이더니 언제부턴가 베이커리를 겸한 대형 카페가 성업이다. 대형 커피숍이 수지를 맞추며 영업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평범한 서민으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지만 이런 생각도 잠깐이다. 고객이 되어 한껏 호사를 부릴 수 있으니 좋다. 도심에서 멀리 위치한 카페에서는 초여름 풍경도 여유롭다. 녹음이 한창인데다 모내기 한 논에는 잔잔한 바람이 분다.


어릴 적 학교에서 식빵을 배급받아 아껴 먹던 일이 떠오른다. 필자 세대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에 받아든 빵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무척 컸었다. 요즘 청년에게는 생소한 보릿고개도 힘겹게 지나왔다. 이제는 다 잊히고 기억조차 희미하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든다. 지난 반세기 남짓한 세월에 우리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이 당당한 선진국이 되었으니 기적이다.


모든 사람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는 못한다. 경제가 발전한 것은 분명하지만 불평등이 확대되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직업 일선에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물려받은 재산은 별반 없어도 부모 부양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데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느라 정작 노후를 넉넉하게 대비하지 못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은퇴 이후에도 살아갈 세월은 길다. 빈곤의 길로 들어서는 노인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에게는 세대 간 불평등이 큰 문제다. 기성세대는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며 새롭게 열리는 기회를 누리며 노력으로 풍요를 일구어 부모보다 잘 사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 청년들은 부모보다 잘 살지 못하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며 가난을 모르고 자란 청년들이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던 기성세대에 비하면 지금 청년들은 여러 면에서 호조건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의 삶은 여간 고단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경쟁이 극심하고 기회는 드문 세상이다.


지역 간 불평등도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필자 세대에는 굳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었다. 대구경북 사람들도 물질적 풍요는 물론이고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구가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서울살이가 녹록하지 않음에도 청년들의 서울 동경은 절대적이다. 서울에 가야 기회가 있고 사람대접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지역에 살면 이등 국민이 된 느낌이고 열등감을 강요받는 사회가 되었다.


대구에서 제법 산다는 지인이 자녀를 서울로 올려보내고 난 뒤 뒷바라지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푸념을 한다. 지방과 수도권의 차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크게 차이 나지 않던 개인의 자산 가치가 가파른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파트 한 채 만으로도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생겼다. 개인의 성취보다 사는 지역이 어디인가에 따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계층이 결정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에 모처럼 주말의 여유도 마냥 편하지 않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걱정하고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어수선한 상황을 뉴스로 접하면서 우리가 당연시해온 평온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국가와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있다. 여러 난제가 산적해 있고 갈등의 뿌리도 깊지만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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