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중대재해처벌법, 산불 대응에 그림자 드리우다

  • 마준영
  • |
  • 입력 2025-06-26  |  발행일 2025-06-26 제23면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과 시행을 지켜보며 산업현장의 안전 문화가 한층 강화되는 모습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2022년 법 시행 이후, 일선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산불 대응' 분야에서의 공무원 동원 문제다.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산림이 국토의 63%를 차지하는 지형에서는 한 번의 산불이 수천 헥타르의 산림을 앗아가고, 수백억 원의 복구 비용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동반한다. 그런데도 중처법 시행 이후, 산불 현장에 투입돼야 할 공무원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위축됐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현장 대응에서 '형사처벌 리스크'가 공무원들의 발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중처법은 산업재해나 공공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기관장 등에게 형사 책임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장이나 산림청장, 교육감 등 각급 기관장에게도 적용된다. 문제는 '사후 책임'에 대한 부담이다. 산불 진화작업에 따른 인력 지원 요청에 응답을 주저하거나 타 기관과의 책임 소재를 분명이 한 뒤 움직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비상소집으로 움직이던 인력이 이제는 '안전교육 이수 여부', '사고 발생 시 책임주체' 등을 명문화한 뒤에야 겨우 투입되는 형편이다. 그 사이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중처법이 지향하는 '책임 있는 행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법이 만들어낸 '형사적 책임 회피 심리'는 분명 행정의 다른 축을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산불과 같이 초기 대응이 중요한 현장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자체 공무원이 산불 진화에 직접 투입되지 않으면, 남는 건 소방인력과 진화 헬기, 산림청 요원 정도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의 특성상, 이들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법은 강화됐지만, 실제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재난 안전'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셈이다.


마준영 중부지역본부 부장

마준영 중부지역본부 부장

따라서 재난 상황에서의 행정책임에 한정해 일정한 '면책 제도'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긴급 대응 시, 공무원이 업무상 합리적인 판단을 했고,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면 중처법상의 책임에서 면책되도록 해야 한다.


현장 공무원의 안전을 보장하는 장비와 교육, 그리고 제도적 보호 장치도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갔을 때, 그들을 지켜줄 매뉴얼과 보험, 보호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의 통합지휘체계를 강화해 '책임 떠넘기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간의 사전 협약을 체결하고, 유사시 자동 동원체계가 가동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우리 사회의 산업재해 구조를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법이 국민의 생명과 안정을 보호하는 또 다른 시스템을 위축시키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금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산불은 매년 찾아오고, 기후위기로 인해 그 규모와 빈도는 증가 추세에 있다. 법의 경직성이 행정의 유연성을 삼켜서는 안된다. '책임을 묻되, 과도하게 위축시키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마준영 중부지역본부 부장



기자 이미지

마준영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