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마을에서 세대를 다시 보다

  • 이유미 작전명이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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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31 06:00  |  발행일 2025-07-30
이유미 작전명이유 대표

이유미 작전명이유 대표

칠곡의 마을에서는 "이제 우리도 나이가 들었으니 노인회에 들어가야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막상 만 65세가 되어 노인회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60대 후반의 여성들은 조심스럽게 한발 물러선다. "가면 막내가 된다"거나 "마을회관에서까지 시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많은 마을에서 노인회는 여전히 위계가 뚜렷하고 전통적인 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다. 60대 여성들에게는 자식들 결혼시키고, 한평생 어른을 모셔온 삶에서 이제야 비로소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노인회마저 누군가의 아래로 들어가야 하는 자리라면, 그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을 뿐인데, 그 공간마저 다시금 역할과 서열이 정해지는 곳이 되는 현실이 버거운지도 모른다.


"이제는 네가 맡아야지"라는 어르신들의 기대와 "조금만 더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중년 여성들의 바람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마을마다 부녀회와 노인회가 통합되어 가능한 만큼 역할을 나누는 곳도 있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 따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세대 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지만, 이제는 삶의 방식도, 일상을 대하는 태도도, 기대의 무게도 모두 달라졌다.


'60대' '70대' '80대'라는 세대 구분은 사실 외부에서 붙인 이름일 뿐이다. 70대는 "아직 70밖에 안 됐다"고 말하고 싶고, 60대는 "벌써 70대처럼 보이냐"며 섭섭해한다. 세대라는 범주는 너무 크고, 그 안의 삶과 정체성은 훨씬 더 다양하고 섬세하다.


이런 맥락은 노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30대들끼리 친하게 지내라"는 말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같은 30대라도 누군가는 취업 준비 중이고, 누군가는 육아에 지쳐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비혼을 선택해 혼자의 삶을 즐기고 있다. 이제 공동체는 단순한 나이가 아니라, 관심사와 생활의 결이 맞는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제 마을 공동체도 변화 앞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같이 한다'는 말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라면, 그 '같이'의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한다. 누군가의 삶을 전제로 한 '함께'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각자의 거리와 리듬을 유지하는 공존이 필요하다. 때로는 함께 걷되, 각자의 속도로. 그것이 오늘날 마을 공동체가 다시 써야 할 '함께'의 정의일지 모른다.


'함께'라는 말의 무거움이 그 따뜻함과 공존할 수 있도록, 마을은 이제 각자의 삶을 품는 방식으로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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