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사스카툰의 여름은 쾌적하다. 기온은 높아도 한국에 비해 습도가 훨씬 낮아 끈적이지 않고 햇빛은 찬란하다. 혹독하게 춥고도 긴 겨울을 지닌 캐나다에서, 짧은 봄에 이어지는 여름은 그 자체로 축복과 활기, 생명의 계절이다. 물론 야생산불은 이곳에서도 심각한 환경문제라 연기 때문에 문을 못 여는 날들이 더러 있고 그 외 몇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그런 불평따위 이 여름의 화창한 태양 아래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날씨 하나만으로 용서되는 시간. 모두들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저녁 산책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앉고,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리고, 공원에는 물놀이나 스포츠를 하는 아이들이 보이고, 겨울날씨에 파손된 도로 정비공사들이 이어지고, 몇 주간 일에서 떠나 멀리 캠핑이나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계절.
그리고 방학이란 시간적 여유와 쾌적한 날씨와 맞는 이번 7월 나는 계획했던대로, 외부일정 없이 깊은 사유가 필요한 논문작업과 가을에 이사해야 할 새 집 알아보기, 몇몇 지인들의 집을 방문하고 어쩌면 주변 호수나 캐나다 로키지역으로 며칠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는, 그런 완벽하게 나 혼자만의 자유를 누릴 한 달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완벽하게 준비된 7월이란 시간 속, 나는 왜인지 한없이 무기력했다. 해야할 일들을 하기만 하면 되는 어느 한 순간 훅 치고 들어온 그 감정은 생뚱맞아 이상했고,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작년 7월, 나는 한국에 있었고 대구는 매우 무더웠다. 방학기간이긴 해도 일이 바빴다. 그 더운 대구에서, 동네 카페를 오가며 많은 업무를 했고, 아빠와 나의 먹거리도 챙기고, 동네 산에도 운동삼아 다녔고, 외부 특강들도 하고, 친구들도 만났다. 에어컨 바람을 안 좋아하는 나는 아침부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고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 그 계절엔, 하루를 '생존'해내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생각했는데도 그럴 수 있었다.
문득, 사스카툰의 겨울과 대구의 여름이 닮은 것 같단 생각을 한다. 너무 극한 날씨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한 욕망없이 그 상황에서 생존해내는 데만 집중하게 되는, 그래서 내 모든 감각과 생명력이 더 깊어지는 시간. 그리고 그건 대도시와 소도시, 도시와 시골, 청년과 노년의 삶, 혹은 다른 상황들에도 적용될 듯하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기에 어쩌면 더 어려운 선택이 있듯, 그 외의 것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보기만 주어진 선택지가 주는 단순하게 집중된 삶이 가진 힘, 거기에서 비롯되는 다른 종류의 생명력이 있다. 최근에 은퇴한 지인이 말했다. 스트레스 없이 여행다니는 삶이 좋아보여도 정신적으로는 일할 때가 더 좋았다고. 캐나다 동부 작은 도시의 대학에서 근무하다 온 동료가 말했다. 그곳에서 다른 할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일에 정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살면서 때로, 저 사람처럼 살 수 있다면, 저런 조건과 환경이 되면, 내 삶도 더 괜찮지 않을까하는 순간들이 있다.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그래서, 자신의 뼈아팠던 결핍을 자식들에게는 채워주는 걸 '양육' 혹은 '교육'이라 생각하며 헌신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결핍이 없는 본인의 자식들은 왜, 그 조건이 갖추어졌더라면 본인들이 살 수 있었을 것 같은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지 답답해하면서, 그 조건이 갖추어지더라도 그 삶은 내 상상과 다르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 인생길 아닐까.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