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의 세상읽기] 미 샬러츠빌 폭동, 무엇을 배울 것인가

  •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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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2 06:00  |  발행일 2025-08-11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2017년 8월12일, 꼭 8년 전 오늘이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샬러츠빌,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 동상 주변에서였다. 끔찍한 사건이 있었고, 경위는 이랬다.


# 샬러츠빌 폭동


석달 전인 5월, 시의회는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버지니아주는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군의 거점이었고 리 장군은 남부연합군의 영웅이었다. 리 장군 동상 철거는 흑인 차별의 잔재 청산을 의미했다. 공권력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이 계속되면서 미 전역에서 흑인 차별을 상징하는 기념물 철거 운동이 확산되고 있던 때였다.


그러자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6월8일에 이어 7월8일에도 시위를 벌였다. 8월11일에는 규모가 꽤 커졌다. 남부연합 옹호자들, 백인 우월주의자들, 신나치, KKK, 극우 민병대가 그들이다. 남부연합기가 펄럭였고 심지어 KKK 상징과 하켄크로이츠(나치기)도 보였다. 2010년대에 등장한 대안 우파도 합세했다. 기존의 보수주의와 달리 반이민, 백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었다. '우파여 단결하라'(Unite the Right)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당연히 그들을 성토하는 인권 활동가와 시민들도 모여들었다. '나치 반대(No Nazis)', 'KKK 반대(No KKK)',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쳤다. 큰 사고 없이 끝난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튿 날인 8월12일에는 달랐다. 무장 민병대도 보였다. 긴장이 고조됐고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다. 오후 2시경이었다. 극우 시위대의 스무살 청년 제임스가 차를 몰아 반대 진영으로 돌진했다. 한 시민이 사망했고 16명이 부상당했다.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은 즉각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의 클린턴 전 대통령과 버니 샌더슨은 극우 폭동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취임 후 6개월 된 1기 트럼프는 애매한 양비론을 폈지만, 공화당의 부시 전 대통령 부자는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공화당의 가드너 의원은 '자국 테러리즘'으로 규정했다. 법원도 제임스에게 고의적 살인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으며 관련 극우 단체에게는 309억원의 민사 배상 판결을 내렸다. FBI는 백인우월주의를 '국내 최대 위협'으로 규정했고 감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민사회도 단호하게 대처했다. 많은 도시들에서 극우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샬러츠빌의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은 4년이 지난 2021년 7월에 결국 철거됐다. 미 전역의 리 장군 동상들도 연이어 철거됐고 남부연합 상징물들도 제거됐다.


# 대구경북의 박정희동상 세우기


작년 12월23일, 대구에서였다. 샬러츠빌과는 정반대 풍경이 벌어졌다.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이 들어선 것이다. 4개월쯤 전인 8월에는 광장 이름도 '박정희 광장'으로 바꿨다. 앞선 12월5일에는 경북도청 앞에도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다. 광화문의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동상보다 높은 8.2m의 거대 동상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일었다.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 본부'가 결성되어 강력 성토하고 나섰다. 1만4천여 시민의 서명을 받아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 지원 조례' 폐지를 대구시 의회에 청구하며 동상 철거를 주장했다. 이름없는 시민들의 항의로 동상이 수난을 당하자 대구시는 감시 CCTV를 설치하고 공무원 야간 불침번을 세우기도 했다.


논란의 핵심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시대정신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를 가난에서 구한 영웅이라 주장하지만,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과 거듭된 내란의 주역인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후에도 비상계엄을 세 차례나 발동했다. 특히 유신 쿠데타(1972)와 긴급조치(1974~1979)의 인권유린은 참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 지식인들이 고문과 조작으로 목숨을 잃거나 옥살이해야 했다. 추종자들이 늘 주장하는 '자유'는 철저하게 짓밟혔다. '영구집권을 꾀한 독재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평가인 것이다. 우상화사업 반대 시민운동 본부가 박정희동상 건립을 '역사 쿠데타'라고 규탄한 것도 그래서였다.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세우는 일은 당연히 시대정신을 담아내야 한다.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한때의 시대정신에 입각해 세워진 동상이 시대가 바뀌어 철거된 예들은 세계에 수도 없이 많다. 샬러츠빌의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지난해 이맘때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LA 인근의 요바린다시에 위치한 기념관에는 그의 생가와 묘지뿐만 아니라 대통령 재임 중의 주요 기념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를 중도 퇴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사건의 전모도 자세하게 전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도 기록되어 있었다. '저는 사랑하는 친구, 내 조국 그리고 나의 정부를 실망시켰습니다. 또 무엇보다 조국을 위해 일하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정부와 공무원들이 부패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 남은 평생을 저는 이 엄청난 짐을 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고향 후손과 후배들은 닉슨의 과오를, 그리고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닉슨의 모습을 그의 기념관에 꾸밈없이 전시한 것이다.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역사에 대한 진정한 기록과 기념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준 모범이었다.


# 샬러츠빌의 교훈


지금은 12·3 내란 책임자들을 단죄하고 내란을 극복해야 할 때다. 혐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극우 이념이 더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전면적인 대책을 강구할 때이기도 하다. 다시는 이 땅에서 내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과거 내란의 역사를 통렬히 반성하며 제대로 교육할 때인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시대적 과제다. 그 요구가 전국적으로 들끓었던 작년 12월5일과 23일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 것은 대구경북 지도자들의 내란 감수성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역사적 기념물과 동상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와 함께 숨쉬며 사랑받는 동상일 수 있고 그럴 때 훌륭한 교육일 수 있는 것이다. 8년 전 오늘의 샬러츠빌 폭동 사건을 떠올리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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