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오는 8월15일 미국 트럼프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간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의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식이다. 이번 회담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향후 국제 질서 재편의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적 국제 평화의 질서는 붕괴되고, 분쟁과 전쟁의 해결을 위한 제도도 무기력해지고, 가치 중심의 동맹 관계도 무너졌다. 오직 힘에 의한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을 극대화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경쟁과 투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약소국들의 비극과 비애가 시작된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가자지구 피해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평화의 중재자'(peace maker)를 자처하는 트럼프는 이미 러시아에 양보를 전제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기세이다. 전쟁 중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20%를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일부 지역과 맞거래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슈인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NATO 가입)은 뒷전이다.
이번 회담의 과정과 결과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동안 이슈였던 한·미간 관세와 무역 문제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 이슈가 중첩될 것이다. 이미 8월25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방비 증액, 주한 미군의 역할 변화, 종전 선언, 북미 협상, 남북 대화 등 중요 이슈들이 봇물 터져 나올 것이다. 실용을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자못 걱정된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공약은 간단했다. 'G7 국가로 도약' 비전 아래 △실용적 4강 외교 △한미동맹의 억제 능력 확보 및 전시작전권 환수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진전 △한반도 평화와 교류 협력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는 집권 후 진보 인사를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에, 정통 외교관료 출신을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외교부 장관에 배치했다. 국정 과제와 인사의 내용을 보면 진보와 실용 간 상호충돌할 부분이 적지 않다.
급변할 국제 정세에 대응하여 이재명 정부는 외교안보 빅픽처(big picture)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이 대통령이기에 서둘러야 할 일이다. 냉철한 분석에 기초하여 포괄적 대전략 수립하에 안정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명확한 지도가 있어야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기본적인 4강 외교에 덧붙여 동남아시아, 중동·아프리카, 남미 진출 등 새로운 전략도 요구된다. 또한 국제 환경 변화에 맞춰 정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용이란 환경 변화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경직된 노선은 실패를 넘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준비 없이 북·미, 남·북 회담에 집착하면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국민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 국가에서 정책의 추진은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특히 한미 동맹, 북한 비핵화, 전시작전권 환수,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등은 대립과 갈등이 큰 이슈이다. 정책 실용성을 중심으로 국민, 특히 반대 진영을 충분히 설득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두 개의 전쟁(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이 끝나면 국제적 관심은 동아시아로 옮겨 올 것이다. 미·중 간 대립 구도 속에서 미·북, 남·북한 간 협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시기에 정부의 능동적·포괄적·유연한 외교적 대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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