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인호 <사>장애인문화예술협회 중앙회장
1945년 8월15일. 그날 아침, 이 땅의 하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유로웠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이란 이름을 벗고, 우리는 드디어 '조선 사람'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로부터 어느덧 8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80년이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거의 한 평생입니다. 그 세월 동안 대한민국은 가난을 극복하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으며, 거리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오늘 같은 날에는 '광복'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곤 합니다.
하지만 문득 저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해방되었는가?" 비록 외세의 지배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이념과 분단의 굴레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가와 체제는 달라도 같은 뿌리를 가진 북녘의 형제들과는 아직도 마음 편히 오갈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 서로를 향한 오해와 불신, 미움과 경계가 여전히 이 땅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우리 사회 안에서도 좌와 우, 세대와 계층, 남자와 여자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 속에서 저는 '진정한 광복'이라는 말이 아직 먼 미래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저는 한때 잘나가던 전문 건축사였지만 마흔 중반의 나이에 뇌졸중을 겪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예고 없이 쓰러졌고, 내 몸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 앞에 좌절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고, 다시 걸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우연히 접한 희망의 단어, 광복이라는 단어속에서 제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뿐이었습니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저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시간 끝에 저는 새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은 저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육체의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마음의 해방'이라는 것을. 진정한 해방은 단지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회복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진정한 광복'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좌와 우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고민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해방의 완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광복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인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진정한 화해와 통합, 그리고 상생을 위한 작은 실천들이 쌓여야 비로소 그 이름에 걸맞은 '자유와 평화'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80년 전, 하늘을 뒤덮던 태극기의 물결처럼 우리 마음에도 다시 한 번 희망의 깃발이 펄럭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비록 장애인이지만 다시 일어난 사람으로서 조국의 진정한 광복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민족도, 이 나라의 사람들도, 다시 일어나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다고.... 이제는 분열이 아닌 연대의 시대로, 상처가 아닌 치유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다시한번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갈 진정한 해방의 길을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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